▶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소장 계급의 사단장은 1만2,000명가량의 실 병력을 거느리는 최고위 일선 지휘관이다. 그래서 흔히 군대의 꽃으로 불린다. 사단장 쯤 되면 군의 현재와 미래라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어깨에 별 두 개를 달고 있는 현역 사단장이 여성 부사관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주 긴급 체포됐다.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체포된 사단장은 육사 동기들 가운데 선두를 달려온 인물로 알려졌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군내 참사들과 1군 사령관의 음주 추태에 이어 발생한 현직 사단장의 충격적인 성추행은 대한민국 군대의 도덕적 일탈과 기강 해이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이나 좋은 구성원들과 나쁜 구성원들이 있게 마련이다. 군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부하들의 귀감이 돼야 할 장군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행위는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군대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군인들의 ‘소명의식’ 실종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소명의식은 ‘부름을 받았다’는 자각을 말한다. 흔히들 하는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는 표현은 군문에 들어서는 것을 지칭한다.
우리는 참 군인들에 대한 일화와 미담들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이들은 군인으로서 뚜렷한 소명의식을 갖고 살았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접하기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다. 군인이라는 직분이 소명보다는 개인의 입신 혹은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변질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체포된 장군에게 이런 소명의식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더라면 그처럼 부끄러운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소명의식의 실종은 군문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소명의식의 원조라 할 성직의 타락은 군대보다 훨씬 광범하고 심각하다. 특히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일부 개신교 유명 목사들의 추문은 성직의 위신을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개신교가 급성장하면서 교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런 가운데 목사들도 마구 양산됐다. 자연스럽게 함량미달 목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명하고도 확고한 소명의식을 가진 목사들도 있겠지만 하나의 직업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서울에만 목사 수가 7만명에 달한다는 한 통계는 한국 기독교의 기형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목회자가 넘쳐날수록 사회는 오히려 더 혼탁해 지고 있다.
군인과 성직자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소명의식이 요구된다고 지적한 사람은 20세기의 위대한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였다. 국민들의 일상적 삶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절대적 영향을 고려할 때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고 입으로만 되뇌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본분을 실천하는 정치인들 말이다.
베버는 정치인에 요구되는 덕목으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균형을 꼽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맨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온통 신념은 과잉이고 책임감은 결여된 불균형 정치꾼들로 넘쳐나고 있다. 정치실종은 정치인들의 소명의식 실종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다.
이렇듯 한국사회의 도덕적 지반이 급속히 침하되기 시작한 것은 IMF 사태 이후 ‘신자유주의’가 휩쓸면서부터이다. 경쟁과 승리를 최고선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모든 행동을 개인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군과 종교, 정치도 이런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소명의식이 실종된 시대에는 명예보다 욕망이 우선순위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체적 가치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군인들의 일탈과 성직자들의 타락, 정치인들의 뻔뻔함은 욕망에 굴복한 이 시대의 초상이다. 한번 형성된 풍조를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욕망을 끝없이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계속된다면 소명의식의 실종과 도덕적 윤리적 타락은 한층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좋은 정치’를 복원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런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려나.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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