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딸이 부부싸움 한 이야기를 듣고 폭소를 터트린 적이 있다. 1.5세끼리 만난 신혼부부인 데 신부는 신랑이 너무 자기 위주인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참다못해 한마디 쏘아붙여 주었다는 것이다. “YOU ARE A 포주!”
“사위가 포주라니?” -지인은 어리둥절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딸이 하려던 말은 ‘폭군’이었다. ‘폭군’이란 단어를 몰라서 ‘군주’와 헷갈리다가 ‘포주’가 된 것이었다. 한국말이 외국에 와서 고생이 많다며 한바탕 웃었다.
한국말이 고생하기는 요즘 한국에서 더 심하다. 마구잡이로 잘리고 줄여지고 뒤섞여 져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는 한국뉴스를 보면서 ‘종부세’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답답했었다. 종가 며느리와 관련된 것인가 했는 데, 알고 보니 종합부동산세의 줄임말이었다. 지금은 변형의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우리말 학대 혹은 파괴 수준이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 중 하나는 우리말에 대한 감각이다. 말도 살아있는 생명체여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데, 우리는 한국을 떠나던 시점의 우리말에 멈춰 있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이승만 시절 한국말을 쓴다”는 놀림을 받곤 했다.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가 소통의 주 매체인 지금은 아예 해득 불가능한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국적불명의 낯선 말들 앞에서 우리는 이승만 시대를 거슬러 조선시대 사람쯤 된 듯 생소하다. 뜻이 짐작되지 않는 것이다. 한달 전 한국에서는 ‘즐추요’라는 인사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친구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은 친지는 무슨 뜻인지를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를 줄인 말이었다.
전통명절인 추석을 맞아 온 국민이 ‘즐추요’ ‘즐추요’ 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엄친아, 차도남 같은 족보 없는 말들이 단시간에 일상적 단어로 자리 잡는 것이 정상적 언어현상일까?
좋게 보면 창의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경박한 이런 말 만들기는 사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들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우리말과 외국어를 뒤섞은 변종 표현들이 줄을 잇는다. 예를 들면 외교부 홈페이지. 해외안전여행과 관련해 ‘알 go 챙기 go 떠나 go’라는 표어가 있는 가하면 ‘너 do 나 do 공공외교 …’ 라는 공모안내도 있다. 한 나라의 정부기관이 자국어를 외국어와 장난스럽게 뒤섞는 것을 기지로 봐야 할까?
한국말이 계통 없이 줄여지고 혼합되느라 겪는 고생보다 더 심각한 것은 완전히 무시당하는 수모이다. 세계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영어 표현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한국말 보다 영어가 더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말은 첩에 밀려난 본처 신세도 모자라 하녀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을 보며 ‘자연스러우면서 여성적이고 예술적이다’ 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이승만 시절 한국말 취급을 받는다. ‘내추럴하면서 페미닌하고 아티스틱하다’는 표현이 한국에서는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여성잡지들을 보면 한국말은 어미나 조사뿐이다. ‘쿨하고 리얼함이 살아있는 트렌디한 스킨’ ‘비비드 칼러와 내추럴 소재, 레오파드 프린트와 이그조틱 스킨과 함께 스팽클 아이템이 서머 룩의 포인트’ 식이다.
우리말이 외국어에 밀려난 또 다른 분야는 아파트. 과거 개나리 아파트나 무지개 혹은 은하수 아파트에 살던 친지들은 이제 이름도 거창한 타워 팰리스나 위브 더 스테이트, 미켈란 쉐르빌, 더 샵 하버뷰 등의 아파트에 산다. 주소에 팰리스나 캐슬이 들어있어서 외국인들은 상대방을 왕족으로 착각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고 한다. 영어이름을 써야 고급스러워 보여서 분양이 잘 된다니 건설사들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말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천덕꾸러기가 되는 걸 보다 못한 시민들이 2주전 한국의 일간지들에 광고를 냈다. “우리말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62학번 일동’이 낸 광고였다.
70살쯤 되었을 이들은 우리말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7개 요인들을 조목조목 짚은 후 국민들의 정서를 걱정했다. ‘단칸방’은 초라하게 느끼고 ‘원룸’은 좋다고 느끼는 정서가 우리말을 해치는 근원이라는 인식이다.
9일은 568돌 한글날이었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자랑이며 자부심의 원천이다. 그에 합당한 예의를 갖춰야 하겠다. 우리말이 더 이상은 함부로 취급받고 천덕꾸러기로 밀려나는 고생을 해서는 안 되겠다. 말은 민족의 혼이 아닌가. 우리말에 대한 꼿꼿한 자존심이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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