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자신들의 행정장관을 완전한 자유 직선제를 통해 선출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며 홍콩시민들이 벌이고 있는 ‘우산 혁명’이 열흘째를 넘어섰다. 시위는 2017년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첫 직선제 선거 후보자를 친중국계 인사로 제한하겠다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결정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정부가 추천한 후보들을 놓고 치러지는 선거는 당연히 관제선거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대의 주장과 요구는 ‘우리는 가짜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다’는 구호 속에 압축돼 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상적인 만큼 현실에서 완벽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불합리성 때문에 100% 순수한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비교적 순도가 높은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려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어휘가 지닌 호소력이 얼마나 강한지 민의를 억압하고 짓밟는 독재국가들 조차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정도다.
흔히들 민주주의의 요체는 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처음 선물해 준 고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들은 선거가 지니고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다. 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선거가 소수의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아테네 시민들은 주요 공직자들을 선거가 아닌 ‘추첨’을 통해 뽑았다. 이것이 훨씬 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다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은 아무나에게 맡길 수 없기에 장군들만은 추첨을 통해 뽑지 않았다.
수천 년 전 아테네 시민들의 우려는 오늘날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선거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해 주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대의민주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거 참여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소수의 열정적 참여자들이 갖는 정치적 비중이 기형적으로 커졌다.
이런 현상은 권력자들에게 더 할 수 없는 호재가 된다. 민의를 조작하고 조종하기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 투표참여에 극성인 소수의 계층을 타겟으로 끊임없이 선동을 반복하면 선거결과를 장악하기가 용이해진다.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는 일부 언론들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런 까닭에 방송장악에 그토록 혈안이 되는 것이다.
나치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반인륜적 극우정권들 조차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민의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살육과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니 선거가 곧 민주주의의 증거라는 순진한 환상은 이제 떨쳐 버려야 한다.
최근 SNS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서 화제를 모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모리슨 맥키버의 ‘진짜 민주주의와 가짜 민주주의 식별기준’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그가 제시한 기준은 ■정부 정책에 반대의사를 밝혔을 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단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가 ■정치권력을 가진 정당에 반대투표를 하고도 앙갚음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집권당에 반대하는 표가 다수일 때 정부가 권력에서 물러나는가 ■헌법에 근거해 선거를 제대로 실시하는가 등 다섯 가지이다.
맥키버는 이 다섯 개 가운데 단 한 개라도 ‘아니오’라는 답변이 나온다면 그것은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여기에다 21세기의 달라진 환경을 고려해 ■사이버 상에서 마음 놓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가를 하나 더 추가하면 좋을 것 같다. 표현과 저항, 그리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아무리 포장하고 합리화를 해도 그저 가짜 민주주의일 뿐이다.
선거라는 제도를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깨어 있는 시민정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거는 가짜 민주주의 신봉자들의 권력을 공고히 해 주는 수단으로 쉽게 전락한다.
시민정신은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파수꾼 정신이다. 민주주의의 순도는 전체 국민들 가운데 이런 정신을 가진 시민들의 비율이 얼마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2014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가짜 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일어난 홍콩의 시민항쟁을 바라보며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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