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범 스님(미동부 승가회장, 문수사 회주)
옛날에 비단장수가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며 비단을 팔러 다녔습니다. 어느 해 봄날은 마을 뒷산을 넘어가다가 피곤해서 잠시 쉬어가고자 양지바른 무덤 옆에서 비단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잔디 위에 누워 팔베개를 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쉬다가 그만 깜박 잠이 든 사이에 누가 비단 짐을 훔쳐갔습니다. 비단 짐이 전 재산인 비단장수가 비단을 잃었으니 살길이 막연하여 고을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고을 원님이 비단장수에게 묻기를 “누가 본 사람 없느냐?”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뭐가 봐도 봤겠지!” “무덤 옆에 서 있는 망주석(望柱石)이나 봤을까? 쥐새끼 한 마리 없었습니다.” “그래? 망주석이 무덤 옆에 있었다고 했느냐?” “예” “여봐라 포졸들은 들어라. 그 망주석이 도적을 봤을 터이니 동헌에 대령시켜라.”
원님의 분부라 포졸들은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도둑을 잡으라는 명령은 하지 않고 왜 망주석을 대령시키라고 하는지 알 수 없구만! 그렇게 불평을 하면서도 망주석을 여러 명이 목도하여 옮겨왔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원님이 망주석을 심문하니 고을 사람들은 빠짐없이 동헌에 참석하여 방청하도록 명하였습니다. 드디어 원님이 출정하여 심문하기를 “망주석은 들어라 비단장수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도둑이 비단 짐을 훔쳐갔다고 하는데 가까이에서 본 대로 말 하렸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자 “아니, 원님이 묻는데도 감히 대답을 안 해! 망주석에 살점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마니를 몇 겹 덮어놓고 말할 때 까지 매우 쳐라.” 명령대로 포졸들이 가마니를 덮고 곤장을 마구 치니 웃음거리였으며 지켜보고 있던 고을 사람들은 참다못해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아니 사또가 정사(精査)를 하는데 무엄하게도 조소(嘲笑)를 하면서 소란을 피워? 포졸들은 들어라. 저기 비웃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어라.” 그 명령에 도망친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붙들려 하옥을 당했습니다. 사또가 이방아전을 시켜 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은근히 귓속말로 전하게 했습니다. “사또가 치정(治定), 치민(治民)을 하는데 감히 비웃고 소란을 피웠으니 그 죄가 크지만 비단 한필만 가져오면 용서해 주고 석방을 해 주겠노라”
고을 사람들은 사또가 어리석어 망주석이나 곤장을 치게 하고 탐관오리가 되어 비단까지 상납하게 하니 걱정이라며 탄식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가족들이 비단 한필씩을 가져왔으며 비단이 어느 정도 들어오자 옥에 갇혀있는 모든 사람을 석방해 주었습니다.
원님이 비단장수를 불러 비단을 확인하게 하니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것을 찾아냈습니다. 원님은 포졸들을 시켜 비단을 가져온 사람들이 어디에서 구해왔는지 조사하게 하여 마침내 범인을 잡았습니다.
범인을 잡아 심문하니 뒷동네를 가기 위해 뒷산을 넘어가다 보니 비단장수가 낮잠에 곯아 떨어져 있기에 갑자기 욕심이 생겨 훔쳤노라고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비단은 임자에게 돌려주고 비단장수의 비단도 모두 찾아 주었으며 그 후로는 도둑이 없는 살기 좋은 고을이 되었다고 합니다.
법(法)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법조계에서는 상식만 가지고는 법을 다스릴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무엇을 섣불리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믿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파와 아무리 파고들어도 끝이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파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상식이고 어디서부터가 전문인지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며 상식으로 사는 사람과 전문직으로 사는 사람과의 견해차이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가 많은 쪽이 해답이 되다 보니 전문분야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숫자가 더 많아 상식이 정답을 이기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자칫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자기위주로 계산해서 세상사를 바라보므로 가족주의적인 나와, 국가주의적인 나와, 세계주의적인 나를 바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상식을 벗어날 수도 없으며 상식을 벗어나면 무질서한 혼란이 오므로 상식 속에 숨어있는 올바른 이치를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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