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에 어느 사업가 집안의 생활비 이야기가 나왔다. 한인사회에서 재력가로 알려진 그는 매달 생활비로 6만 달러를 내어놓는 데 그의 아내는 늘 부족해 한다는 것이다. 6만 달러는 미국의 가구당 연 중간소득 수준. 금융위기 이후 하락했던 중간소득이 지난 3년간 꾸준히 올라가 2014년 6월 기준 5만3,891달러가 되었다고 얼마 전 희망적인 뉴스로 보도되었다.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분류하는 우리 보통사람들에게는 돈과 관련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단위가 있다. 천 단위는 월급, 만 단위는 연소득이다. 그래서 월급 4,000달러인 사람이 그 두세배 받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거나 혹은 시기한다. 그런데 갑자기 단위가 훌쩍 뛰어올라 ‘한달 생활비가 몇만 달러~’ 하면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쓰지?” 싶어 어리둥절해진다.
미국의 빈부격차가 심하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가진 소수와 못 가진 다수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부자는 가난한 다수의 형편을 헤아리지 못하고 가난한 다수는 부자의 부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 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 뉴스이다.
보통사람들은 최고경영자(CEO)의 보수를 어느 정도로 짐작하고 있는 지에 대한 조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하버드 비즈니스대학과 타일랜드의 출라롱콘 대학 학자들이 전 세계 40개국 5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이다. 그중 미국의 케이스를 보면 미국인들은 CEO의 보수가 하위직 근로자 보수의 30배쯤 된다고 생각하면서 “격차가 너무 크다. 6.7배 정도면 적당하다”고 대답했다.
근로자의 월급을 넉넉하게 3,000달러 정도로 잡고 “CEO는 월 10만 달러, 연 100만 달러 정도 받지 않을까?” 짐작한 것 같다. 보통사람들로서는 통 큰 짐작이지만 현실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2012년 기준 S&P 500기업 평균 CEO 보수 대 일반 근로자의 보수는 354대 1이다. 보통사람들의 짐작 보다 10배나 큰 액수다. 2013년 CEO의 중간보수는 1,050만 달러였다. 이번 조사에서 미국은 보수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 선진국 중 경제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격차가 큰 나라는 스위스와 독일로 150대 1 수준이다.
이솝 우화에서 개미는 성실한 일꾼으로 묘사된다. 개미처럼 열심히 부지런하게 일하면 언젠가는 풍요로운 삶이 보장된다는 교훈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걸까.
뉴욕타임스에 ‘일하는 삶’이라는 특집이 있다. 지난주에는 마리아 퍼난데스라는 여성이 소개되었다. 포르투갈 이민 2세인 그는 미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미용학교에 갈 돈이 없어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다. 던킨 도넛 종업원인 그는 일자리 하나로는 뉴웍의 지하 아파트 월세 550달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도넛 가게 세 군데를 돌며 일했다. 밤 근무, 낮 근무 그리고 주말 근무였다.
밤 근무 끝나면 몇 시간 후 다시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집에 가는 대신 자동차 안에서 두세시간 눈을 붙이곤 했다. 차안이 후덥지근해서인지 종종 엔진을 켜놓은 채 잠을 잤다. 그래서 개스가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개솔린 한통을 항상 자동차 뒤에 비치해 두었다.
지난 8월25일 아침 6시에 일을 마친 그는 한 샤핑몰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세웠다. 오후 근무지로 가기 전에 몇 시간 잠을 자두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잠이 든 사이 개솔린통이 넘어져 뚜껑이 열리면서 휘발성 개스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개스 중독으로 그는 사망했다. 32살 그의 죽음은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는 고된 삶의 상징으로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경영자와 근로자의 보수 격차는 30대 1 정도였다. 그런데 80년대부터 경영자의 보수는 펑펑 뛰어오르고 근로자의 보수는 사실상 제자리에 남으면서 오늘과 같은 격차가 만들어졌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경영원칙이 도입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경영자가 근로자들의 복지보다 주주들의 배당금을 우선적으로 챙기면서 부의 편중이 심화했다.
개미들이 삶이 갈수록 고달파진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풍요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낟알을 하나하나 땀흘려 모으는 사이 다른 편에서는 기계로 한꺼번에 쓸어가 버리니 당할 재간이 없다. 개미들이 현실을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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