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골프광인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노동절 연휴기간에 급하게 골프장 예약을 하려다 거부되는 망신을 당했다. 뉴욕에 머물고 있던 그는 잠깐 빈 시간을 이용해 골프를 즐기려 유명 골프장 몇 곳에 예약을 시도했지만 골프장들은 이미 예약이 차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했다.
전직 대통령이 골프를 치겠다고 연락하면 앞뒤로 두 팀씩 예약이 취소되는 것이 관례인 한국에서는 이 같은 현직 대통령의 망신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아마 대통령이 예약을 거부당하기라도 한다면 수많은 대통령 숭배자들이 골프장의 무례를 비난하고 나설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비난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해도 개인의 권리를,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이 사회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종종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 지칭된다. 그러나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시스템과 법률로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 시스템과 법률 안에 갇힌 권력은 엄밀히 말해 권력이라기보다는 권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권력의 이런 제한성 때문에 많은 미국 대통령들은 좌절감을 토로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5성 장군 출신 아이젠하워는 명령 한 마디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와 달리 자신의 말이 쉽게 먹히지 않는 정치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트루먼 대통령도 “나는 하루 종일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서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은 고작 이 정도”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이와 달리 한국 대통령이 현실정치 속에서 갖는 무게감과 영향력은 미국과 비할 바가 아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에 불러 모아놓고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은 삼권분립을 흔드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여당에 실질적인 입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논란을 일으켰다. 삼권분립을 언급하면서 자신은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이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내용의 발언을 하는 광경은 대한민국 권력의식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이다. 법률로 규정된 힘도 막강한데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의식이 한층 더 그렇게 만든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호칭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President는 원래 ‘주재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 단어를 대통령으로 번역한 나라는 일본이다. 원래 번역은 ‘통령’이었지만 큰 나라인 미국의 국가 지도자를 높인다는 의미로 ‘대’자를 붙였다.
그런데 이 번역이 작은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되면서 president를 절대 권력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의식을 규정한다. 대통령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제왕적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권력지향 풍토도 대통령의 절대 권력화에 한몫 하고 있다. 한 정치학자는 현세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한국사회는 선진국들보다 권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더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보통 한 번 떨어지면 대권의 꿈을 접지만 한국에서는 두 번 세 번의 대권도전이 보편적이다.
이런 현실적, 역사적 배경들이 어우러지면서 대선은 날이 갈수록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승자는 오만해지고 패자는 절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이런 감정적 양극화는 대화와 타협, 절충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 한국사회를 좀먹고 멍들게 하는 갈등과 대립의 밑바닥에는 이처럼 비대한 권력을 놓고 벌이는 기형화 된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
해법은 단 하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지금보다 훨씬 별 볼일 없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대권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대통령이라는 호칭부터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것이 힘들다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개헌도 심각히 고려해 봐야 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 가 없이는 덜 싸우는 사회, 정치 선진국으로 진입은 절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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