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인 이번 가을, 한국 출판시장에 추리, 스릴러 등 다양한 소재의 일본 소설 공세가 무섭다고 한다. 그 중 무라까미 하루끼는 이번에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을 선인세 약 2억 5,000만원을 받고 문학동네에서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하루끼가 1987년 출간한 장편 ‘노르웨이의 숲’은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으며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을 둘러싼 모험’, ‘해변의 카프카’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전 세계 45개 이상의 언어로 50개가 넘는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소소한 감성이 모두 다 독자와 맞는 것은 아니다. “굵게 만 김밥이란 정말 참 훌륭하다. 여러 가지 재료들이 모두 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기분이니 좋아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김밥 양끝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온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그의 에세이집에 나온 이 문장은 일부분만 맞다. 우리네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생선 대가리가 더 맛있다’며 자손들에게 가운데 토막을 먹게 해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다. 본인은 정갈하게 잘린 가운데 김밥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까미 하루끼의 책은 20~30대 여성은 물론 50대 중년남성에게도 인기리에 읽혀지고 있다.
2009년 봄에는 하루끼의 소설 ‘ IQ84’가 선인세 1억엔(당시 14억원) 소문으로 문학동네가 출간(이후 문학동네는 8,000만원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은 그 소설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이게 뭐야’ 했는데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 안난다. 출판사는 본전을 건졌을까.
작년 여름에는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끼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에 다시 한국 출판사들의 과당경쟁이 불을 뿜었다. 36세의 철도회사 직원이 고교시절 친구 4명으로부터 절교를 당한 뒤 깊은 상처를 안고 살다가 절교를 당한 이유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선인세 16억원‘이라는 소문을 일으킨 민음사가 판권을 땄고 책을 출판 했지만 그 비용 외에 추가 마케팅비가 있었을 텐데, 책 한권 팔아서 얼마나 남는다고, 이 역시 본전을 찾았을까.
일본소설 내용이 기발하고 강해서, 서구 작품들에 비해 우리 정서와 비슷하여 공감대가 많아서, 그래서 출판 실패 확률이 낮다고는 하나 미리부터 거액의 선인세를 주는 것을 보면 돈이란 것이 참 아깝다. 또 국내작가들은 얼마나 창작의욕이 위축될 까. 선인세 100만달러, 10억원 정도면 한국 작가 200명과 계약 할 수 있다.
한국의 최고 소설가라도 선인세 1억원 받기가 쉬울까 싶은데, 이러니 한국출판사는 세계 출판계의 봉이라는 말을 듣는다. 몇 몇 대형 출판사의 과당경쟁에 치여 영세출판사는 나날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출판사는 기획을 잘 하여 좋은 책 만들기에 힘쓰고 한글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드는 한국작가들을 키우고 대우해줘야 한다. 독자들도 소문난 책보다는 스스로의 눈으로 좋은 책을 발굴해야 한다.
한국 작가로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 신경숙, 공지영, 김훈 등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이 중 작가 이문열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의 아들’도 데뷔하여 ‘젊은 날의 초상’, ‘레테의 연가’,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무려 5권의 소설이 베스트셀러로 진입하여 80년대에 이문열 신드롬을 일으킨 그다.
그의 역사소설은 뮤지컬 ‘명성왕후’로 만들어져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작가는 1990년대 이후 진보계열 인사들, 마광수,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정치인들을 소설 속에 묘사했다가 일부 독자들이 그의 책 장례식을 여는 수난을 당했다.
한국의 현대사와 그 속의 굴곡진 인생들을 작품 세계의 근원에 둔 작가의 실제 삶이 거와 비슷함을 알게 되면 그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우리는 한국말로 글 쓰는 작가들을 좀더 사랑하자. 무라까미 하루끼 신간이 나오는 대로 서점에 달려가 사지 말고 이번에 이문열의 ‘변경’ 개정판이 나온다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 국내작가와 작품이 더 좋아질 것 아닌가. 한 나라의 문화상품이 좋아지면 국격도 올라간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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