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한국에서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회의나 수업 중 몇몇이 수군수군 잡담을 하면 사회자나 교사가 하는 말이 있었다 : “지방방송 끄세요!” 주의가 산만해져서 ‘중앙방송’ 전달에 지장이 있으니 입을 다물라는 의미였다.
소셜네트웍 시대인 지금은 ‘지방방송’ 전성시대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 고성능 마이크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지방방송’을 한다. ‘지방방송’ 극성에 정통 언론 즉 ‘중앙방송’이 휘둘릴 정도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당장 SNS 공간에 글을 올리고 남이 쓴 글에 댓글을 달고 막말이 나오고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그것들을 퍼오고 퍼 나르고 하는 것이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그러다 보면 처음의 이슈는 실종되고 엉뚱한 것이 새 이슈가 되면서 싸움은 또 다른 싸움을 낳고 … 끊이지 않는 이전투구에 세상은 조용할 날이 없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였다. 신문사의 선배기자가 광주에 다녀온 후 입을 열지 못했다. 충격 때문에, 그리고 눈으로 본 것을 보도할 수 없는 무력감과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론들은 ‘불순세력의 준동’이라고 획일적으로 짧게 보도했다.
언론이 통제되는 상황에서는 차라리 신문이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사실을 은폐 왜곡 보도하는 ‘중앙방송’ 때문에 ‘지방방송’들이 목숨 걸고 진실을 전해도 대중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중앙방송’을 믿는 것이었다. ‘침묵의 나선’ 현상이 진실의 소리를 짓눌러 질식시킴으로써 오래도록 우리는 ‘광주’에 눈감은 채 귀막은 채 입다문 채 살아야 했다.
침묵의 나선 혹은 소용돌이 이론은 소외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약함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직후 알카에다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사실은 미국이 먼저 잘못해서 … ” 식의 견해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여론이 한쪽으로 강하게 몰려갈 때 혼자서 다른 쪽을 고집하다보면 집단에서 왕따 당하기 쉽고, 이상한 사람 취급 받다보면 직장에서 밀려나는 등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배적 견해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이를 감춤으로써 고립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다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롭게 생각을 표출하고,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침묵하다 보니 여론은 한쪽 방향으로 쏠리고 소수 의견은 점점 줄어들어 나선형으로 잦아든다는 것이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1974년 이 이론을 내놓은 독일 정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은 사람들에게 오감 외에 제6의 감각기관이 있어서 주변 여론의 동향을 민감하게 파악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누구나 ‘마이크’ 하나씩 잡고 있는 인터넷 시대에는 어떨까. 퓨 리처치 센터와 럿거스 대학 연구진이 이번 주 관련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에 의하면 SNS 공간에서도 ‘침묵의 나선’ 효과는 여전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친구들 대다수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굳이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반면 친구들과 의견이 같을 때는 토론에 참가할 확률이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끼리끼리 현상이 극심한 SNS 공간의 특성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같은 의견을 내고 동조하고, 과격할수록 주목받으면서 여론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뉴스도 성향에 맞는 보도만 받아들이고 반대성향 보도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니 자기 확신이 확대재생산 되면서 집단 극단화 현상이 일어난다. 한국에서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골이 나락처럼 깊어진 데는 SNS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세월호’가 대표적이다.
세월이 흘러도 ‘세월호’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온 국민이 유가족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며 하루 빨리 진상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며 한마음이 되었던 때로부터 4개월 반. ‘진상규명 어떻게 할 것인가. 특별법은 필요한 가’로 시작된 좌우 갈등은 최근 엉뚱하게도 한 개인의 이혼, 아빠로서의 자격 문제로 전선이 옮겨져 ‘중앙방송’ ‘지방방송’이 뒤엉켜 진흙탕 싸움을 했다. 본래 이슈와는 무관한 일, 남들이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가정사라는 인식은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혼란의 근본적 책임은 물론 무능한 정치권에 있다.
같은 대나무로 악기도 만들고 흉기도 만든다. 인터넷 시대에 우리 손에 쥐어진 ‘마이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사회를 양극으로 분열시키는 흉기도 될 수 있고, 가슴 따뜻한 글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악기도 될 수 있다. ‘지방방송’도 방송윤리는 필요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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