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70쯤 되면 문득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언제까지 건강을 유지할까?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누가 나를 보살펴 줄 것인가?”
한 세대 전만해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노부모를 모시는 주역은 장남, 나머지 형제들은 옆에서 돕는 역할을 했다. 노년의 삶의 질은 장남이 얼마나 효자인가, 맏며느리와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가로 거의 결정이 났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면서 가정의 역학구도에도 변화가 왔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딸들의 목소리이다. 결혼하면 ‘딸’의 역할은 접고 ‘며느리’ 역할이 우선이던 여성들이 지금은 당당하게 ‘딸’의 역할을 한다. 자라면서 딸이라고 차별받은 적 없고, 남자 형제와 똑같이 교육받았으며, 결혼 후에도 직장일을 병행하면서 남편과 똑같이 생계를 책임지는 세대의 달라진 모습이다. 무뚝뚝한 아들보다는 섬세한 딸이 부모를 잘 챙기기 마련이니 딸 가진 부모들이 살 맛 나는 세상이 되었다.
이를 통계로 확인하는 연구결과가 며칠 전 소개되었다. 프린스턴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는 안젤리나 그리고르예바가 지난 19일 미국 사회학회 연례총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50세 이상 미국인 2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조사한 결과 딸(월 평균 12.3시간)이 노부모를 돌보는 시간은 아들(5.6시간)의 두 배가 넘는다는 내용이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를 찾아가 식사며 약복용을 챙기고 청소와 빨래를 도우며 같이 장을 보는 등의 일은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녀가 주로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딸들의 경우 직장일, 자녀양육 등으로 상황이 어려워도 가능한 한 시간을 짜내서 부모를 보살피는 반면 아들들은 별로 애를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이가 있는 경우 아들들은 더 더욱 노부모 돌보기에 무심한 경향도 확인되었다. 집안의 딸이 알아서 하려니 하고 믿는 것이다.
노년에 딸 없으면 서럽다는 사실은 노인아파트의 노인들이 잘 안다. 아파트 복도 따라 문들이 죽 이어져 있는데 문이 자주 열리는 집은 딸 있는 집이라는 것이다. 양로병원 병실도 마찬가지다. 방문객이 수시로 찾아오는 병실을 보면 으레 딸 있는 환자의 방이다.
40대의 한 남자후배도 “부모님께 너무 무심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는 3형제 중 맏아들이고 그의 아내는 딸 셋인 집의 맏딸인데 양쪽 집이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아내와 처제들은 부모님께 잘 합니다. 매달 용돈 모아 드리고 철마다 아버지 양복을 새로 해드리지요. 우리 형제는 그런 것 없어요. 아들들, 아무 소용없어요.”
그래서 “세상에 제일 불쌍한 엄마는 아들 둘 키우는 엄마”라는 말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돌 정도이다. 아들도 아들 나름, 딸도 딸 나름이겠지만 이런 표현에서 분명해진 것은 남아 선호 현상의 퇴조이다. 주변을 보아도 아들 둘 가진 부부가 딸 갖고 싶어 셋째를 낳는 경우는 있어도 딸 둘 가진 부부가 아들이 필요해서 셋째를 낳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한국에서 ‘아들 욕심’이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2000년 즈음만 해도 남녀성비 불균형이 사회적 이슈였다. 태아 성별 확인 후 여아를 낙태시키는 일이 성행해서 “10년 후면 남자 100명중 17명은 여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당시 태어나는 여아 100명당 남아 비율은 110.2명. 그런데 지난해에는 105.3명으로 떨어져 정상이 되었다(자연 상태 성비는 103~107명). 남아 선호 혹은 여아 기피 현상이 사라진 결과이다. 여아를 기피하기는커녕 ‘딸 낳는 법’이 인기를 끌 정도로 요즘 젊은 부부들은 딸을 좋아하는 추세이다.
농장지경(弄璋之慶) - 아들을 얻은 즐거움을 의미한다. 시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들을 낳으면 집안의 경사여서 침상에 누이고 좋은 옷을 입히며 손에는 구슬을 쥐어주었다고 한다. 구슬은 입신양명의 기대를 담는다.
딸을 얻은 즐거움은 농와지경(弄瓦之慶). 딸이 태어났다는 것은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일. 술이나 데우고 밥이나 지으면 되는 존재이니 아기를 맨바닥에 누이고 포대기를 두른 다음 실패 장난감을 쥐어 주었다고 한다. 3000년 전 중국의 사회상이다. 아들이 집안의 명운을 좌우하니 남아선호는 생존의 방식이었다.
가부장제도가 허물어진 지금 아들은 아들로서 딸은 딸로서 소중하다.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키우는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성년이 된 후 노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딸 없어 서럽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중년의 아들들은 신경을 좀 써야 하겠다. 자식 대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대하면 그게 바로 효도라고 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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