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얼마 전의 일이다. 아는 분과 같이 뉴저지 어느 한인식당에 식사 하러 갈 일이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갔는데 저녁 먹을 시간이라 식당 주차장이 좀 분주했다. 주차장에선 주차요원이 바쁘게 자동차를 안내하며 차 키를 받고 손님을 내리게 했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었는데 자동차를 본 주차요원이 이상한 손짓을 했다.
주차장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래서 주차장 입구에서 후진하여 다시 도로로 나오려 했다. 어쨌든 주차요원의 말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식사를 하러 갔던 분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분의 자동차는 벤츠였고 이미 주차요원에 의해 주차장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중요한 만남이라 넥타이에 정장까지 말끔히 하고 갔는데 주차요원이 내 자동차를 주차장에 들어가는 걸 왜 거부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동차가 너무 낡았기에 그랬나보다. 1995년 형이니 20년이 다 된 차다. 벤츠가 먼저 들어가 키를 받은 뒤, 뒤에 들어가려는 내 차를 보니 너무 볼품없는 차라 주차를 거부한 것이다.
상황이 잘못 돌아가는 것 같은 감을 느낀 먼저 내린 그 분이 잠시 주차요원과 얘기를 나누고 난 후 주차요원이 내 차를 다시 들어오라고 했다. 식당에 올라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그 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분 하는 말이 “내 차를 주차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자신도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1년 전인가, 시집간 큰 딸이 “아빠 차가 너무 오래됐으니 새 차로 바꾸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거부했다. “아직도 차가 잘 나가고 문제가 없는데 왜 새 차로 꼭 바꾸어야만 하는가. 차가 움직이는 그 날까지 차를 그냥 타고 다니겠다”고 했다. 세월이 오래된 차라 작은 문제들은 생기나, 다니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아빠의 마음을 읽어서인지, 그 후론 자동차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부모를 염려해주는 자식의 마음만 받으면 됐지 무얼 더 자식들에게 바라겠는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무슨 대수인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대수이지.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세상은 빨리 지나야 좋은 세상이 되질 않을까.
2003년 가을 유럽 지역을 처음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특히 독일에서 여러 날 머물렀다. 도시와 시골을 다니며 관광을 했다. 독일 공항에 내릴 때부터 받은 감동(공항 화장실 화장지가 전부 검은 색깔.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재활용품이었음)도 있었지만 독일 사람들의 근면과 검소함엔 또 다시 감명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민들의 자동차 보유 년수가 보통 20년이란다. 독일제품의 자동차가 튼튼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들이 벤츠 같은 차를 20년 30년씩 타고 다닐 줄은 미처 몰랐었다. 독일엔 벤츠가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가장 흔한 차로 그곳에서는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그러면 금방금방 새 차로 갈아치울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치의 기준을 사람에게 두지 않고 물질에 둘 때, 그 곳엔 진실(眞實)과 진솔(眞率)함이 들어설 자리를 잃게 된다. 또 생명력마저 사라진다. 사람은 차별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절대 진리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차별을 스스로 자행하며 살아가고들 있는가. 그걸 모르고 살아가니 불행 중 다행이다.
차이(差異)와 차별(差別) 중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 보스턴의 어느 스님이 말했듯이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평등이다. 벤츠타고 다니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차이는 인정하나 차별은 두지 말아야 한다. 부와 가난. 차이는 인정하나 부자와 가난한자의 차별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인종 차별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인종의 차이를 인정함은 옳다. 허나 흑과 백에, 차이가 아닌 차별을 두는 것은 용납해선 안 된다. 자동차의 겉만 보고 주차를 거부하려 했던 그 주차요원의 차별성. 주차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이지만, 우리 모두의 얼굴들이다. 생명 없는 물질을 우상처럼 받들어야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 속에 자신의 얼굴도 들어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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