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몸과 생각은 변화를 겪는다. 신체의 기능은 떨어지고 주름과 흰머리는 늘어만 간다. 외모의 변화와 함께 사회적 역할도 축소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젊은 시절의 호기는 사라지고 자연스레 우울한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노년기 노화에 따른 이미지를 의존(dependency) 질병(disease) 무능력(disability) 우울(depression)의 영어 첫 글자를 따 4D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노인들은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 되기 쉽고 이에 따른 차별을 겪는다. 언론에 보도되는 노인 차별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이슈가 됐던 노인들의 피트니스센터 가입 차별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건강을 중시하는 웰빙 바람을 타고 피트니스센터를 찾는 노인들이 크게 늘어나자 일부 고급 피트니스센터들이 ‘물을 흐린다’는 이유로 노인들 가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한 신문사가 10여 곳의 피트니스센터를 대상으로 “61세인데 가입이 가능한지”를 물었더니 단 두 곳에서만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노인들은 피트니스센터에 머무는 시간이 긴데다 각종 물품들을 많이 사용해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게 노인들을 꺼리는 이유였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조치가 젊은이들이 아닌, 기존 노인 회원들의 요구로 취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노인이 젊은 사람들에 의해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노인들에 의해 차별받고 있는 것이다.
노인에 의한 노인 차별은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노인을 통해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정신 분석학자들은 이것을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생긴 의식적인, 그리고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 설명한다. 다른 노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늙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심리작용이라는 것이다.
좀 더 젊어 보이려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리는 노인들 입장에서 다른 노인들의 존재는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다른 노인들을 보면서 마치 자신을 거울로 보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갖는 부정적 감정을 자기혐오감이라고 한다. 이런 감정을 갖게 되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타인을 싫어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을 고르지 않고 부자를 두둔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자기혐오감으로 설명하는 정치학자들도 있다. 자신의 비루함을 상기시키는 정치세력보다는 계급적 환상을 심어주는 정치세력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많은 노인들은 산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조용한 은퇴시설보다 복작거리는 도심의 은퇴시설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자녀들의 방문이 한결 용이한 데다 도심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나이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노인들에만 둘러싸여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한인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노인아파트에서 집단 따돌림이 지속적으로 자행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부 노인들은 이 때문에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있다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회의 어른이 돼야 할 노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퇴행적인 행동들이 조금은 실망스럽다.
노인의 상징은 육체적 힘이 아니라 지혜와 경륜이다. 지혜와 경륜은 자신의 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서부터 자라난다. 다른 노인들을 괴롭히고 차별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노화를 되도록 거부해야 할 부정적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다른 노인들이 싫은 것이다.
예일대 연구진이 노화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진 70~96세 사이 미국 노인들을 3년 간 관찰했더니 이들의 청력상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를 부정적으로 여길수록 육체적 노화가 촉진된다는 말이다.
정말 더 젊어지고 싶다면 다른 노인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하나의 비법이다. 노인이 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젊은이들의 존경과 대접을 바란다면 그것은 염치없는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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