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식 뉴잉글랜드 감리교회 담임목사)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감동을 준 ‘빙점’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의 평생을 환자로 병상에서 지내야 했던 일본의 작가 미후라 아야꼬가 쓴 장편 소설입니다.
20대 초반에 나름 인간의 죄 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에게 그녀의 빙점이라는 책은 더위에 목말라 지쳐가던 사람에게 한 잔의 냉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과연 한 인간이 스스로 선하고 의롭게 될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산다 할지라도 그에게 그것이 구원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책은 그 어느 누구도 스스로는 어찌 할 수 없는 내면의 원죄의 실체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요꼬라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빙점이라는 책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본적이 없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속편)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마음에 각인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의 주인공인 요꼬가 차가운 북해 위를 떠다니는 얼음 산, 유빙에서 불이 붙어 타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타는 유빙’ 그녀는 자신 안에 숨어 있던 빙산 같은 거대하고 차가운 자신의 의를 보면서 동시에 그것이 불에 타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빙산은 자신이 평생 붙들고 살아온 선하고 의로운 자신 그 자체였습니다. 불의하고 왜곡된 세상의 중심에서, 증오와 살의가 가득한 환경 가운데서 때론 절망도 했지만 사실 그녀가 다시 일어나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의로움과 선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요꼬의 삶의 모습은 빙점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오히려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마지막 불타는 유빙을 바라보면서 요꼬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에 자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빙점은 자신 안에 흐르는 원죄의 실상이었다면 불타는 유빙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는 능력이었던 것이지요.
모세가 광야에서 나이 80일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애급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를 이스라엘의 영적인 리더로 부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목격하게 됩니다. 불이 붙은 떨기나무, 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가장 흔하고 가치 없는 가시나무에 불을 붙여 놓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그 안에서 말씀하셨을까요?
모세는 나이 40세 젊고 패기가 넘칠 때 자신의 믿음의 큰 결단을 통해 바로의 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자처합니다.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용기 있는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모두가 감동하고 또 칭찬 받을 만한 행동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 그의 모습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모세의 결단과 용기에 기뻐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래 이때다 말씀하시면서 그를 보내셨어야 하지 않을 까요? 그러나 출애굽기를 보면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러한 모세의 결단 앞에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그냥 모세 혼자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나서는 구체적인 행동들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애급의 왕 바로를 배신했고 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는 도망자가 됩니다. 거기서 그는 평범한 양치기로 장가들고 아이를 낳으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노인이 되기까지 보내게 됩니다. 실패한자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과거에 가졌던 믿음의 용기와 결단도, 그리고 바로의 궁에서 누렸던 화려한 권세도 이제는 한낮 추억에 불과한 이야기가 되어졌습니다.
이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말도 어눌한 노인이 되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그에게 나타나셔서 마치 모세 자신과도 같은 모습의 떨기나무에 불을 붙여 놓으시고 그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다시 말하면 나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나이도, 권세도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간다 한들 누가 알아주고 이제는 말도 제도로 못하는 노인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라고 항변하는 듯합니다. ‘왜 내가 나서서 일하려 할 때는 도와주시지 않고 이제 와서 나를 괴롭게 하냐’고 하는 속내가 담겨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가라는 것입니다. “너는 못해 그러나 내가 너와 함께 하면 할 수 있어” 이 말씀은 마치 자기와 닮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모습으로 모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려는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체험 할 때가지 하나님은 모세를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저는 빙점이란 책에서 빙산에 불이 붙는 모습과 모세가 부르심을 받는 과정 속에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그토록 붙들고 싶은 내안에 의가 있고 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것이 우리 자신일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나에 힘이 돼서 불의 하고 잘 못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반대로 어떤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제는 없어’ 하면서 가치 없게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그래서 소망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빙점이 있습니다. 이것이 녹아질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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