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도착하니 세상이 그득하다. 슬픔과 비통, 분노와 원망으로 찢기고 갈라졌던 세상이 갑자기 하나 된 듯 그득하다. 대단히 특별한 한 사람,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 중이다. 지난 몇 달 음울한 흑백 화면 같았던 한국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칼러 화면으로 바뀐 듯 생동감이 넘친다. 교황의 방문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말, 위로받고 싶은 아픈 가슴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빈함 소탈함 겸손함 그리고 빈자들의 친구라는 표현들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근엄한 교황이라기보다 이웃 할아버지 같은 그의 자애로운 미소는 종교와 종파, 국경과 민족의 벽을 뛰어넘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시해 가슴에 피멍 든 많은 사람들은 교황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얼어붙었던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눈물이다.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되는 존재,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의 독특한 품성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파격이다. 지난해 3월 취임 이후 교황은 전임 교황들에게서는 꿈도 꿀 수 없던 파격적 행보들로 세상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교황으로서 맞은 첫 생일인 지난해 12월17일 인근 노숙자들을 불러 생일상을 함께 했는가 하면, 성 목요일 세족례 때는 소년원 수감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그 중에는 무슬림도 있었다.
최후의 만찬에 앞서 예수가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준 것을 기념하는 세족례 때 교황은 가톨릭 사제 12명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전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 대신 수감 청소년들의 발을 택했다.
가톨릭이 절대 용납 못하는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교황은 파격적이다.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만약 그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내가 누구라서 그를 심판 하겠는가”라고 말해 지난해 전 세계가 시끌시끌했다.
전통이든 교리든 거리낌 없이 뛰어넘는 자유로움과 과감함, 인자한 미소로 특징지어지는 평온함과 온화함 -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이 교황의 안에서는 편안하게 조화를 이루는 데, 이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의 지향점이 확고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교황의 시선이 닿는 곳을 보면 항상 ‘사람’이다. ‘사람’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종교도 법도 ‘사람’ 다음이니 무슬림을 껴안고 범죄자들, 불법이민자들을 위로하며, 지위나 명예는 더 더욱 뒷전이니 지난 5월 중동방문 중 요르단 국왕과의 만찬 대신 시리아 난민들과 식사를 했다. ‘사람’이 먼저 보이니 온 얼굴이 혹으로 뒤덮인 희귀병 환자에게 입을 맞추고 더러운 행려병자를 안는 데 주저함이 없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깊으니 가진 자 보다는 못 가진 자, 군림하는 자 보다는 억눌린 자에 마음이 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전임 교황들은 교리를 중심으로 교회가 단합해 교회의 사명을 다하도록 강조했던 데 반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리보다 사명이 먼저다. 그리고 교황에게 가장 근본적인 교회의 사명은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발표한 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은 “자기 안위만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렵혀진 교회”가 되라고 권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 시절 “사제에게서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한다”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사제는 양 치는 목자이니 양들과 항시 함께 지내다 보면 양의 냄새가 몸에 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 울타리 안에서 교리와 더불어 고고하기보다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보듬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말이다.
평생 승용차 보다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며 사람들 속에 섞이고 빈민촌을 내 집처럼 드나든 교황에게서 ‘양’의 냄새는 깊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양’들이 위로 받는 이유이다.
4박5일 교황의 방문이 끝나면 한국의 풍경은 반짝 칼러 화면에서 다시 음울한 흑백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가 개조’까지 거론되던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은, 잔치 끝난 그 자리에 그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의 방문이 한국사회에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교황이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주는 지혜, 사람 사랑을 좀 배운다면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사람’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세상의 많은 아픔들은 덜어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나 병영 가혹행위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황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시선을 맞추어 보자. 가치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지면 삶은 그만큼 더 충만해질 것 같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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