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이다. 14세기 유럽의 인구를 절반으로 줄여버린 흑사병, 잉카제국의 멸망을 초래한 천연두 등이 대표적이다. 인간의 역사 중 한 줄기는 질병과의 전쟁이다. 병원체를 찾아내 치료법을 개발함으로써 많은 질병들을 정복했지만 괴질과의 전쟁은 끝이 없다. 요즘은 에볼라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확산되고 있는 에볼라 출혈열로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6개월 전 기니에서 처음 발병한 후 바이러스는 인근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으로 번지며 계속 기세를 떨치고 있다. 예방백신이나 치료법이 없어서 병에 걸렸다 하면 십중팔구 죽음이니 발병지역 주민들의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볼라가 세계적 관심을 끈 것은 극히 최근이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주민들이 죽어갈 때는 ‘지역’ 뉴스로 국한되던 것이 갑자기 ‘세계’ 뉴스가 된 계기는 서구 의료구호단원들의 감염이다. 환자들을 돌보다 병에 걸린 의사, 간호사, 선교사가 본국으로 이송되면서 각 나라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에볼라에 대중적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라이베리아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다 감염된 30대 의사 켄트 브랜틀리가 애틀랜타, 질병통제국 산하병원으로 긴급 후송되면서 ‘에볼라’는 핫뉴스가 되었다.
감염성 질병 앞에서 우선 나타나는 반응은 두려움이다. 생명체가 죽음에 대해 갖는 자연스런 공포심이다. 여기에 무지가 더 해지면 상황은 악화한다.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도 무지가 한몫을 했다.
현지 보도내용을 보면 국경없는 의사회 등 의료구호단체 요원들에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먼 타국에서 온 의료진에게 감사는커녕 그들은 믿으려 들지도 않았다. 가족 친지들을 줄줄이 쓰러트리는 에볼라를 주민들은 저주의 마법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만 들어가면 살아나오는 법이 없으니 의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사람 죽이는 곳’이라는 소문이 돌고, 실제로는 없는 병을 의료기관들이 돈 모으려고 일부러 꾸며낸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그래서 발병 즉시 격리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집에 숨어 있으니 가족, 이웃들에게 계속 전염되면서 병의 확산을 초래했다. 공기전염이 아니라 환자의 혈액이나 침 등 체액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전파력이 낮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무지’는 아프리카 현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브랜틀리와 함께 라이베리아에서 의료선교활동 중 병에 걸린 낸시 라이트볼을 애틀랜타로 이송하자 일부 미국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절대 반대’였다. 두 사람으로 인해 미국에 에볼라가 창궐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바이러스의 감염경로를 고려한다면 가능성 거의 제로인 무지한 발언인데 가장 목소리를 높인 인물 중의 하나가 도널드 트럼프였다. “멀리까지 가서 사람들을 돕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 그렇다면 그 결과도 (거기서) 감수해야 할 게 아닌가!”라고 그는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에서는 아프리카인에 대한 무조건적 과민반응이 문제가 되었다. 역시 무지의 소산이다. 서울에서 개막된 유엔주최 차세대 여성 세계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한국 대학생 38명 중 36명이 불참했다. 아프리카 대표들과의 접촉을 꺼린 때문이다. 에볼라 발병지역과는 수천마일 격절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감염자 취급했으니 무지도 이런 무지가 없다. 중국에서 전염병이 돌았다는 이유로 같은 아시아인인 한국 사람을 기피하는 식이다.
에볼라 창궐로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는 의료진의 희생이다. 환자의 혈액 등 체액에 가장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시에라리온의 에볼라 권위자였던 시크 우마르 칸 의사가 지난달 말 사망한 것을 비롯해 의료진의 숭고한 희생이 줄을 잇고 있다. 죽을 위험을 알면서도 환자들을 돌본 결과이다.
같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죽음의 현장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벼락 맞을 확률만큼의 손해도 안보겠다는 이기심 덩어리도 있다. 윤회에 입각한 불교의 해석을 빌리면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는 축생의 단계를 막 벗어나 사람으로 태어난 자도 있고 천상에서 인간계로 내려온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은 고통이 끊이지 않는 고해.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고결한 소수가 있어서 그나마 살만하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도, 에볼라 창궐 지역에서도.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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