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문을 훑어보던 중 한인타운의 한 수퍼마켓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주말 세일이라며 패키지 2개로 판매량을 제한한 소꼬리 가격이 파운드에 7달러59센트이다. 정상 가격은 7달러99센트. 불과 2주전 가격은 6달러 미만이었다. 뉴욕에 사는 딸의 가족이 LA로 휴가를 와서 딸이 좋아하는 꼬리찜을 준비했었다.
로스구이용 같은 연한 부위의 쇠고기 값은 이미 오래 전에 파운드에 10여 달러가 되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육식을 줄이는 것이 한 추세이지만 이제는 비용 부담 때문에라도 선뜻 고기를 살 수가 없다. 고기 값이 너무 싸서, 한인들이 이민 오면 한국에서 고기 못 먹던 한부터 풀던 미국은 사라졌다.
치솟는 육류 가격, 요세미티 인근을 태우는 산불, 중가주 농민들의 한숨 -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세 현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500달러짜리 세차’를 추가하면 공통점은 더 분명해진다. 차단 노즐 없는 호스로 세차하다 적발되면 벌금이 500달러인 물 낭비 단속 시대 - 모두가 캘리포니아의 가뭄에서 비롯된 현상들이다.
캘리포니아가 사상 최악의 가뭄을 맞고 있다. 연방 농무부와 전국해양대기청, 전국가뭄대책센터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연방가뭄감시 보고서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의 58%가 ‘이례적’ 가뭄지역이다. ‘심한’ 가뭄, ‘극심한’ 가뭄을 넘어서는 가장 심각한 단계의 가뭄이다.
농토에서 흙먼지가 펄펄 날리고 호수와 저수지 가장자리가 쩍쩍 갈라진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광경은 캘리포니아에서 더 이상 ‘이례적’이 아니다. 1999년부터 가물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최악의 가뭄 기록을 세웠고, 올해 그 기록을 다시 깨고 있다. 비가 온 게 언제였던 가 생각해보면 … 멍할 뿐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가물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가뭄으로 물이 귀해지면서 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을 공급받아야 생산되는 모든 것은 가격이 뛰고, 광활한 중가주 농지에는 물이 모자라 작물재배를 포기한 빈 땅들이 생기며, 메마를 대로 메마른 산과 들에는 산불 위험이 높아졌다. 연방농무부는 이미 뛰어오른 육류와 청과물 가격이 6% 정도 더 인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소도 농작물도 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가뭄이 닥치니 새삼 확인이 된다.
“물은 금보다 귀한 것”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아프리카, 차드에 우물 만들어주기 캠페인을 펼쳐온 소망소사이어티의 유분자 이사장이다. 국토의 절반이 사막인 차드에서 삶의 환경은 열악하다. 대부분 지역에 식수가 따로 없다. 마을 한편의 강이나 호수가 우물도 되고 배설의 장도 된다.
배설물이 둥둥 떠다니는 흙탕물을 사람도 마시고 짐승도 마시니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끊이지 않는다. 물 없이는 살 수 없어 물을 마시지만, 그 물로 인해 오히려 죽게 되는 아이러니가 일상사인 곳이다.
소망우물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4년 간 만들어진 우물은 근 200개. 우물이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마다 그 마을 어린이들의 눈빛이, 어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그는 눈으로 확인했다. 물은 금보다 귀한 것, 물은 곧 생명이라는 깨달음이 자연스럽게 찾아 들었다.
캘리포니아가 시시각각 메말라가고 저수지의 물은 나날이 줄어드는데 가뭄이 아직도 남의 일인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이다. 가뭄은 TV 화면의 영상일 뿐 집안의 수도에서는 여전히 물이 콸콸 쏟아지니 물 부족 사태를 실감하지 못한다. 지난 1월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가뭄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20% 절수를 당부했지만, 물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물 낭비 단속반이 가동되고 벌금제가 도입된 배경이다.
물은 제한된 자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던 수백년 전이나 첨단과학 시대인 지금이나 인간이 물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있는 물을 아껴 쓸 수 있을 뿐이다.
어떻게 아껴 쓸 것인가? 각 카운티, 시정부마다 물 절약 계몽을 위해 재치있는 슬로건들을 내놓고 있다. “팬티는 뒤집어서 한번더 입자. 아니면 절수 세탁기를 장만하라. 리베이트가 있다.” “이빨은 다 닦지 말고 하나 건너씩만 닦자. 아니면 절수 수도꼭지를 설치하라.”“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를 많이 만드는 이유는?” 같은 조크도 있다. 답은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고 싶어도 물이 없으니까”.
각자 물 쓰는 습관을 돌아보자. 워낙 물을 물 쓰듯 하기 때문에 무심한 낭비만 줄여도 절수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우리가 아낀 물 한방울이 훗날 우리 후손들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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