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 때문에 속을 끓이는 친구가 있다. 30대 초반인 그의 딸은 이제껏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다. 아이비리그 나올 만큼 공부는 항상 최우등이었고, 대인관계도 좋아서 사회활동이 활발하며, 부모에 대한 마음 씀씀이도 여간 세심한 게 아니다. 지인들 사이에서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저런 딸을 두었느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이다.
그런 딸을 두고 친구가 밤잠을 못 자는 이유는 한 청년 때문이다. 딸의 직장동료인 그 청년이 딸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데 “혹시라도 둘이 결혼하겠다고 나오면 어쩌나” 친구는 지레 애를 태우고 있다. 야근을 밥 먹다시피 하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는 딸이 매일 한 공간에서 그 청년과 마주치며 일하고 있으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고학력 고소득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청년은 객관적으로 일등 신랑감이다. 하지만 그가 인도계라는 것이 친구에게는 영 마음에 걸린다. 인도계 사위 맞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해본 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민연륜이 길어지면서 한인사회에서도 타인종 타민족의 사위나 며느리 맞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퀸즈 칼리지 사회학과의 민병갑 교수와 오하이오 라이트 주립대학의 김치곤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미주 한인사회의 세대별 결혼형태’에 의하면 2세들의 경우 한인보다는 타민족과 결혼하는 케이스가 오히려 흔하다.
특히 여성들이 타민족 배우자를 맞는 경우가 많아서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미국에서 태어난 2세 여성 중 61.3%가 이에 해당된다. 2세 남성 중에서는 배우자가 한인(54.6%)인 경우와 비한인(45.4%)인 경우가 대충 반반이다. 연구진은 2007년부터 2011년까지의 센서스 자료와 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 결과를 분석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30대 중반인 한인2세 여성의 개인적 관찰도 비슷하다. UC계열 대학에 재학할 때부터 한인여성 10명이 친구 그룹으로 지내왔는데 현재 이들 중 5명이 결혼했고 나머지 5명은 미혼이다. 결혼한 친구들 중 2명은 남편이 한인이고 다른 3명은 비 한인이다.
이 작은 그룹에서 한인2세 여성이 타인종과 결혼하는 비율뿐 아니라 미국에서 이 연령층의 결혼 비율도 거의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다. 인구조회국 분석에 의하면 2009년 기준, 결혼 적령기(25~34세) 미국의 젊은이들 중 미혼(46.3%)이 기혼(44.9%) 보다 많다. 30대 중반 되도록 결혼을 안 하는 것이 한 추세가 되고 있다.
한인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큼 걱정도 많다.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로 속 태우지 않으려면 통계를 기준으로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미국서 태어나고 자란 아들딸이 30대 중반까지 결혼할 가능성은 반반, 결혼할 경우 한인 며느리 맞을 가능성은 반반, 한인 사위 맞을 가능성은 2/5 정도.
그렇게 머리로는 정리를 한다 해도 한인 사위·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 1세 부모들이다. 순수 한인혈통을 잇고 싶은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아들딸을 정성들여 성공적으로 키운 부모일수록 가정 좋고 학벌 좋은 참한 한인 며느리, 듬직한 한인 사위로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 또한 크다.
그런가 하면 일가친척 없는 이민생활의 외로움이 한인끼리의 혼사를 선호하게 하기도 한다. 타인종 사위나 며느리를 맞아 아쉬운 점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사돈’이다. “노년에 사돈과 골프도 치고 여행도 하며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 사돈이 타인종이니 어쩌다 만나도 말도 안 통한다고 섭섭해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언어장벽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전통적 고부관계의 어려움, 딸 가진 부모가 사돈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 예를 들면 혼수 스트레스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라고 없지 않다.
타인종 사위나 며느리 혹은 사돈과는 이런 미묘한 감정적 갈등에서 자유롭고, 말이 잘 안 통해 적당한 선에서 멈추다 보니 시시콜콜 따지다가 감정 상할 일도 없다. 서로 의무감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지내다 보면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한다.
미국에 살면서 타인종 며느리나 사위 맞을 가능성은 높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바꿀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여기에도 해당된다. 성인자녀가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을 ‘인종’을 근거로 반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대한다고 결혼이 막아지지도 않는다.
‘인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사람’을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을 보면 백인이든 흑인이든 중국계든 인도계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서로 아끼는 마음, 사랑하는 관계가 중요할 뿐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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