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멀쩡한 인사들 여럿이 자리 때문에 또 다시 망가졌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후 갖가지 탈법과 위법, 그리고 도덕적 흠결이 드러나면서 낙마한 사람들 얘기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자리에 임명되지 않았더라면 그런대로 다른 이들의 인정과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갈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인데 감춰져 왔던 행각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얼굴을 들기 힘들게 됐다. 자신들을 후보로 지명해 잠시나마 헛바람을 불어 넣은 대통령이 원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책임은 욕심 때문에 자신들의 과거에 눈 감은 채 감투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허물투성이 후보자들에 있다. 정보추적 방식이 발달하면서 이전 같았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을 비리들이 환한 수술대 위 알몸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이다. 그러니 검증기준 또한 자연히 까다로워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인사청문회 풍경은 미국의 청문회와 사뭇 다르다. 한국 청문회는 후보자에 대한 신상검증의 성격이 강하다. 자질검증은 뒷전이다. 후보 지명 단계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와 달리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철저하게 후보자의 능력을 따지는 일에 집중한다. 개인 주변에 대한 조사는 지명이 이뤄지기 전에 철저하게 진행된다. 절대로 지명을 서두르지 않는다. 속전속결로 단 며칠 만에 검증을 마치는 한국과 다르다. 그리고 청문회도 시한을 정해놓지 않고 진행되다 보니 지명에서 인준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다.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들이 잇달아 낙마하자 화가 난 여권 일각에서 인사청문회 폐지론까지 주장한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자의 자격과 자질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권력으로 인한 민주주의 훼손을 막자는 취지로 시작된 제도이다. 그리고 현재의 한국 인사청문회 시스템은 집권세력이 야당이던 시절 자신들이 밀어붙여 만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은 극단적 편의주의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계속 발생하니 아예 자동차를 없애자는 식의 억지 주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제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물을 고르지 못하는 형편없는 안목을 탓해야 할 것이다.
미국 인사청문회 광경 가운데 가장 부러운 것은 후보자 가족들을 초청하는 관례이다. 지난 2009년 4월 열렸던 고흥주 국무부 법률고문의 인사청문회장에는 고 후보자의 어머니 전혜성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이 나와 청문회를 지켜봤다. 이 광경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후보자 가족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한국식의 고성과 추궁은 상상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고위직을 의미할 뿐 아니라 철저한 1차 검증을 통과했다는 말이 된다. 그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 되기에 충분하다.
고위직을 꿈꾸는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권유하고 싶다. 자리 제안이 들어오면 무조건 덥석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이 청문회를 치른다고 상상해 보기를 말이다. 스스로의 과거에 대해 떳떳하고 어떤 의혹에 대해서도 당당히 해명할 자신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정중히 고사하는 것이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현명한 처신이 될 것이다.
“가치관이 혼란스럽던 고도성장 시기에 도덕적, 법적으로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위법과 편법을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합리화 하려는 것은 원칙과 양심을 지키며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또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기준 때문에 능력 있는 인물을 쓰기 힘들다는 푸념도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자에게는 도덕성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졸속 임명한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에 따른 행정 공백과 시간 낭비도 심하다. 그러니 지금처럼 서두르기보다는 아예 충분한 시간을 갖고 후보자의 평판을 살피고 다각도로 검증한 후 청문회에 올리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하루아침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난 후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모습을 볼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그것은 첫 단추 잘 꿰기, 즉 가족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후보를 고르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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