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의 한 대학 인근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 주로 대학 교재들을 취급하는 데 요즘은 교과서를 판매하기보다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과서 가격은 비싸고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은 어려우니 교과서를 빌리는 것이 한 추세가 되었다. 비용이 훨씬 덜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학기가 끝나면 교과서를 반환해야 하는 데 많은 학생들이 책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한까지 반환하지 않으면 학생의 크레딧카드로 책값을 물리게 되고, 그마저 납부하지 않으면 콜렉션 에이전시로 넘어가는 것이 수순이다.
“아직 어린 학생들인데, 크레딧 망칠 게 안쓰러워서 되도록 콜렉션 에이전시로 안 보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반드시 잘 하는 것만도 아니더군요.”
“저 서점에는 책을 안 돌려줘도 괜찮다”는 엉뚱한 소문이 돌아서 비즈니스에 영향이 오더라고 그는 말한다. 원칙대로 하자니 너무 야박한 것 같고 온정을 베풀면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지금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오로지 미국에 오겠다는 일념으로 수천마일을 걷고 버스타고, 떨어지면 즉사하는 지옥열차 꼭대기에 올라타고 …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텍사스나 애리조나 국경지대로 몰려드는 중남미 아이들 문제이다. 보호자 없이 혼자 국경으로 몰려온 중남미 아이들이 지난해 10월부터 집계해도 5만7,000명이 넘으면서 밀입국 아동 ‘홍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확히 ‘밀입국’은 아니다. 이 아이들은 몰래 국경을 넘어 미국 내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진해서 국경수비대에 체포된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온 미성년자들은 미국이 받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머나먼 길을 온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온정과 원칙을 둘러싼 딜레마로 미국사회가 대단히 시끄럽다.
발단은 ‘엉뚱한 소문’이었다. ‘나 홀로’ 미국행 아이들의 대부분은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3개국 출신이다. 극심한 빈곤과 갱 폭력으로 언제 어느 때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사회, 국가가 국가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미국에 먼 친척이라도 있으면 무작정 밀입국을 감행하는 예가 전에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숫자가 폭등한 것은 지난 2012년부터였다. ‘나 홀로’ 미성년자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여성에게는 미국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입국을 허용한다는 소문이 나돈 때문이었다. 비접경 국가 출신 미성년 밀입국자에 대해서는 강제추방 대신 이민재판 등의 절차를 거치며 보호하도록 되어있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이 와전된 결과이다.
이렇게 미국 땅을 밟은 아이들을 담당하는 것은 보건후생국이다.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을 거쳐 아이들을 수용소로 보낸다. 그리고 한달 쯤 후 대부분 미국 내 친척이나 후견인에게 보내 이민재판이 열릴 때까지 머물게 한다. 재판이 열리려면 보통 수년이 걸리니 아이들을 찾아내 추방시킬 가능성은 낮다.
이들에 대한 미국의 여론은 두 갈래이다. 첫째는 ‘불법이민은 절대 받아줘서 안된다’는 원칙론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 시키는 비용이 다 어디에서 나오는 가. 미국 시민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일해서 낸 세금 아닌가. 그럴 돈 있으면 미국내 홈리스부터 챙기는 것이 맞다. 이런 식으로 받아주니까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불법이민에 대해 너무 느슨하게 대처한 결과이다.”라는 내용들이다.
다음은 ‘이미 여기에 온 불쌍한 아이들, 포용해야 한다’는 온정론이다. 그들은 말한다. “생명이 위협받는 곳으로 아이들을 되돌려 보낸다는 것은 너무나 비인도적이다. 그 아이들은 끔찍한 폭력을 피해 도망 온 ‘난민’이다. 미국이 전쟁에는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으면서 인도적 일을 위해 훨씬 적은 돈도 쓸 수 없다면 그건 어리석고 부도덕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양측의 중간에서 균형을 잡느라 애를 쓰고 있다. “불법 입국 아이들은 반드시 되돌려 보낸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하는 한편 이민자옹호 진영에는 “아이들에게 적법한 절차를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계속 몰려들고 온정과 원칙 사이, 딜레마는 계속 된다.
‘자유의 여신상’ 밑에 새겨진 엠마 라자루스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그대 고단한 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이여, 자유로이 숨 쉬고자 하는 군중이여, 내게로 오라.” 미국은 그런 열망으로, 그런 포용으로 만들어진 이민자의 나라이다. 미국이 미국다움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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