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위반을 하고도 ‘위반 했다’고 지적 받으면 억울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통위반이다. 과속이나 일단정지 위반 등으로 티켓을 받으면서 “내가 잘못했으니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그 정도 위반은 누구나 하는 건데 “재수가 없어서 나만 걸렸다”고 억울해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이 인사청문회 몸살을 앓고 있다. 총리 후보자 2명이 청문회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낙마했고, 청문회를 앞둔 국정원장과 8개부 장관 후보자들 역시 갖가지 ‘위반’ 설에 휩싸여 있다. 평생 내로라하며 어깨에 힘주던 한국의 ‘1%’ 인사들이 ‘청문회’ 앞에만 서면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되는 드라마가 너무 자주 반복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대개조’를 내세우며 그에 맞는 총리 물색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원점으로 돌아오자 이제는 청문회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청문회 때문에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불만이 여당 쪽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청문회’를 둘러싼 시각은 둘로 나뉜다. 현실이냐 원칙이냐의 문제이다. 전자는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을 문제 삼으면 청문회 통과할 사람 아무도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며 현실을 감안하라고 주장한다.
한국 같이 ‘빨리빨리’ 성공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위반은 누구나 해온 것, 그러니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청문회 문턱에서 혹은 청문회장에서 밀려난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이 내심 억울해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반면 야당은 ‘원칙’이라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교통순경이 되어서 과속이나 신호위반 같은 자잘한 위법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티켓을 뗀다. 정권 바뀔 때마다, 그래서 여당이 되느냐 야당이 되느냐에 따라 청문회 의원들의 입장이 바뀌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보다 더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
안대희, 문창극 두 총리 지명자들이 반대여론에 시달리다 못해 사퇴하자 주위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즘같이 시시콜콜 온갖 신상 다 털리는 세상에 그들은 아무 문제없을 줄 알고 지명을 수락했느냐는 것이다. 총리자리에 마음을 두지 않았으면 전설적 칼 같은 법조인으로, 신앙심 깊은 원로 언론인으로 존경받으며 여생을 마쳤을 인사들이 왜 사서 여론재판의 망신을 당했느냐는 것이다.
자세한 내막은 당사자들만이 알 뿐이다. 하지만 이전의 여러 총리? 장관 지명자들의 낙마를 보면서, 지명되었을 때의 한껏 들뜬 표정과 불과 얼마 후 사퇴할 때의 초췌한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들을 들뜨게 하고 결국 추락하게 만든 것은 ‘자리 욕심’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리’란 명예와 권력의 상징. 많은 경우 돈이 같이 따라오니 할 수만 있다면 잡고 싶은 것이 높은 자리이다. 부모들이 아이를 초등학교 때부터 닦달해서 기어이 좋은 대학에 입학 시키려는 것도 결국은 아이가 높은 자리에 올라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하고 싶은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리는 높을수록 좋은 걸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는 오히려 불행을 부를 뿐이라고 신영복 교수는 한 책에서 썼다.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으면 십중팔구 끝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자리’가 ‘사람’ 보다 크면 감당을 못해서 결국 사람이 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70%’의 자리를 강조한다. 자기의 능력이 100이면 70 정도를 요구하는 자리에 앉는 게 적당하다는 말이다. 30 정도 여유가 있으니 무리하지 않고,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할 수가 있다.
반대로 능력은 70이면서 100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으면 그때부터 삶은 피곤해진다. 부족한 30을 채우느라 거짓, 위선, 아첨을 동원하게 되고 심하면 부정행위까지 하게 되니 파탄을 맞을 위험이 크다.
고위공직에 지명되는 사람들이 자리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본다면 청문회장에서 망신당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자신의 능력, 도덕성, 정치철학 등을 그 ‘자리’와 비교해 본다면, 스스로 먼저 검증해보고 거취를 결정한다면 여론재판에 희생되었다고 억울해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이 소란스러운 것은 분수를 모르는 욕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탐욕이다. 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의 분수를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이와 같이 하면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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