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지난해 7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잊혀진 승리”라고 선언했다. 6.25사변이라는 명칭의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북한 인민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도 선 이남을 넘어오면서 발발된 민족의 비극이다.
민족간 정치적인 대결행위의 연장선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결국 UN에 가입된 여러 나라들이 참전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국제적인 이념대결로 확전되었다.
한국동란은 사상 유례없는 세계 제2차 대전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벌어진데다, 휴전체결 10여 년 이후 미국인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지금도 참전용사들을 괴롭히는 베트남전 사이에 낀 전쟁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기억에서 한국동란이 잊혀진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주한인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잊혀질 수 없는 트라우마이고, 한인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미국 곳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영원히 잊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전참전 미군용사들과 UN군을 기념하기 위해 1991년 미국에서 최초로 세워진 한국전 기념비는 배터리파크에서 볼 수 있다. 맨하탄의 최남단 배터리 파크 내에 있는 기념탑은 수도 워싱턴 소재 링컨 메모리얼 앞에 있는 한국전쟁 기념관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미국최초의 한국전쟁 기념비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이곳의 기념비는 54,246명의 전사자, 103,248명의 부상자, 그리고 8,177명 실종자(missing in action)들의 용맹을 기리고 있다.
이곳 외에도 우리에게 더 친숙한 기념비는 한인 밀집지역 플러싱에서 주말마다 가족들과 산책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키세나 공원 안에 세워져 있다. 이곳의 기념비는 조각가 윌리엄 크로지어의 작품인 ‘경험속의 고통(The Anguish of Experience)’이라는 청동상이 함께 하고 있다. 고뇌에 빠진 듯 한 표정의 참전군인 동상이 있고 기념비 앞면에는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는 문구와 뒷면에는 퀸즈 출신 전사자 172명의 이름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한국에서도 물론 현충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 전쟁기념비가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을 기리는 곳에서 아직도 이념전을 펼치는 곳이 있다. 1897년 인천시 중구 응봉산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인천자유공원이다. 설립 당시 이곳의 이름은 만국공원이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 자유공원으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 동상은 인천상륙작전의 주인공인 더글러스 맥아더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는데 언제부터인가 진보라는 이름의 세력이 맥아더가 민족분단의 원흉이기에 민족정기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이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유공원 한 복판에 자리한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좌파 단체들의 해묵은 시위가 올해도 어김없이 벌어질 거라 생각되니 오랜만에 키세나 공원에 가서 기념비를 보려고 하는 마음이 왠지 착잡해 진다.
전쟁자체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모두에게 파괴를 남기는 비극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대로, 전쟁의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민간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불가피하게 겪은 이 전쟁을 어떻게 규정하고 추억하는 지는 기억하는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오 필승 코리아!” 온 세계가 축구로 하나 되는 브라질 월드컵축제를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한국의 승리를 외치는 한국인의 함성이 지구촌 지축을 흔들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은 뻥 뚫려 있고 가슴은 시리기만 하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동족간의 이념전쟁과 살육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오늘을 보면서 16강 진입을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부르짖는 함성 이면에 잊을 수 없는 6.25의 뼈아픈 상처와 아픔이 오버랩 되고 있기 때문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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