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월드컵이 개막된 지 1주일 만에 네덜란드와 칠레, 콜롬비아는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국팀이 16강에만 …’ 싶은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별 리그 1차전에서 그리스를 3-0으로 완파한 콜럼비아는 19일 코트디부아르를 2-1로 꺾으며 곧바로 16강행을 확정지었다. 노란색 유니폼의 콜롬비아 선수들이 초록의 잔디구장에서 함께 춤추며 자축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콜롬비아 선수들에게는 ‘월드컵’ 하면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 20년 전인 1994년 미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었을 때였다. 당시 콜롬비아는 펠레가 우승후보로 꼽을 정도로 실력이 막강한 다크호스였다. 그런 콜롬비아가 축구 약체였던 미국에 어처구니없이 패하면서 16강에도 끼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안드레 에스코바르라는 수비수가 자책골을 넣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콜롬비아 국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 지, 대표팀 특히 에스코바르에게 쏟아진 비난이 얼마나 거세었을 지는 짐작할 만하다. ‘역적’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가 실수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귀국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는 여자친구와 레스토랑에 갔다가 괴한의 총격을 받고 즉사했다. 범인은 이를 자책골에 대한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축구도박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확인 되지는 않았다.
이 정도 되면 ‘월드컵이 뭐 길래?’ 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뭐 길래 감정이 이렇게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치닫는가.
축구란 간단히 말하면 정해진 시간동안, 정해진 공간에서 공 가지고 노는 것. 선수들에게는 돈과 명예가 걸려 있지만 관중은 선수들의 경기를 즐기면 그뿐이다. 어느 선수가 골을 넣든, 어느 팀이 이기든 사실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경기결과에 분노한 관중들이 집단 폭동을 일으키고 심판이나 선수를 공격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그 정도는 아니어도 한국팀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대단히 격앙된 상태가 된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각자의 손과 발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면서 흥분하고 환호하고 소리치고 열 받고 낙담하고 …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선수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모두 연결된 존재, ‘우리’가 된다. 한국팀의 경기를 우리가 단순히 즐기는 차원에서 관람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우리’ 라는 각인이 얼마나 깊고 강한 지를 보여주는 실화가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가 한 참전용사의 예를 소개했다. 2차대전 후 고향으로 돌아온 병사가 신체기능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실어증이었다. 결국 그는 사회생활을 못 하고 재향군인 병원에서 고립된 채 30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라디오에서 그의 고향 팀과 숙적인 팀 간의 축구경기가 중계 방송되었다. 게임이 거의 끝날 무렵 고향 팀 선수가 골을 넣어 승리하는 듯 했는데 심판이 오프사이드 반칙을 선언했다. 그 순간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라디오를 노려보면서 30년만에 처음으로 입을 열어 “이 병신 같은 놈!”이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그 후 그는 다시 굳게 입을 닫았다.
미국에서 30년, 40년을 살아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국 팀이 ‘우리’ 팀이다. ‘각인’의 힘이다. 찬란하던 2002년 월드컵의 기억도 이제는 아스라하고, 평가전 성적도 부진해서 응원 열기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예선전이 시작되니 응원의 불이 붙는다. 22일의 알제리 전을 앞두고 한인타운 곳곳에 합동응원의 장이 마련되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교회 단위, 가족친지 단위로 응원을 계획하는 분주하고 상기된 모습들이 축제 그 자체이다.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의 내면에는 몇가지 심리적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다. 우선은 연상 작용이다. ‘우리’ 팀이 잘 싸워 승리하면 그것이 곧 나의 승리로 여겨지는 심리이다. 맹수처럼 달려가 날카롭게 골을 쏘는 선수와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일체화하면서 찾아드는 것은 대리만족이다.
이어지는 것은 카타르시스. 전후반전, 90분간 일상사를 잊고 오로지 환호하고 박수치며 경기에 몰입하는 동안 존재의 정화작용을 경험한다. 일상생활 중에 쌓인 찌꺼기들을 훌훌 털어내는 기분, 스트레스와 욕구불만의 무게가 부쩍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축제’의 기능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던 사람들이 월드컵 덕분에 다시 한번 ‘우리’를 경험한다. “대~한민국!” 환호에 가슴이 뛴다면 당신은 ‘우리’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