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두 아버지의 추락이 눈길을 끌었다.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밀집 도시, 부에나팍의 밀러 오(50)시장과 한국의 6.4 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고승덕(56)후보가 그 주인공들이다. 오씨는 지난달 30일 재판에서 중범죄 유죄평결을 받으면서 시장직을 박탈당했고, 고씨는 31일 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파장을 일으켜 다 된 선거를 망쳤다. 두 케이스 모두 ‘나쁜 아버지’로 찍힌 것이 문제였다.
1.5세인 밀러 오씨는 2010년 부에나팍 시의원에 당선되던 즈음부터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의원으로, 이어 시장으로 일하면서 한인 관련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그를 좋게 평가하는 한인들이 많다.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잘 해주었다는 것이다.
시정을 관장할 능력도 있고 정치적 야심도 있어 보였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자녀양육비’였다. 이혼한 전처에게 자녀양육비를 주지 않기 위해 차량등록국(DMV) 서류에 이름, 생일, 소셜시큐리티 번호 등을 허위기재한 혐의로 2년 전 기소되었고, 이번에 5건의 공문서 위조혐의에 대해 유죄평결을 받았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기 위해 신분세탁을 했다는 말이 된다.
그에게 어떤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자녀양육비 문제이고 보면 그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아버지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성적표’가 화려하기로는 고승덕 변호사를 따를 사람이 없다. KS 마크(경기고-서울대)인 것은 물론 대학재학 중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외무고시 차석 합격, 행정고시 수석 합격을 연달아 하고 서울대 법대를 수석졸업 했다. 이어 예일, 하버드에서 수학하고 컬럼비아에서 법학박사를 받았으니 최고의 학벌이다.
화려한 성적표는 화려한 이력서로 이어졌다. 판사, 변호사, 증권 전문가, 방송 프로그램 출연자, 국회의원, 교수 등 한 사람이 해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동이 많았다. 그런 한편으로 ‘꿈과 노력’을 주제로 한 성공비결 특강을 수백 차례 하고 책들을 펴냈다. 지난해 펴낸 청소년 지침서 ‘꿈으로 돌파하라’는 여성가족부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로 뽑혔다. 학생들에게 그는 ‘공부의 신’으로, 학부모들에게는 자녀가 본받았으면 싶은 롤 모델로 존경 받았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돌팔매가 던져졌다. 뉴욕에 사는 딸 캔디 고씨(27)가 ‘이런 사람이 교육을 맡게 해서는 안된다’며 ‘서울 시민에게’ 보내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빠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을 때 내 나이 겨우 11살이었다”는 그는 매년 ‘아버지 날’을 그냥 넘겨야 했던 서러움, ‘너희 아빠는 어디 있니?’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의 아픔을 토로했다. 1998년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 미국으로 왔을 때 고후보는 한국에 남았고 이후 일체 연락이 없었다”며 안부전화 한통 없었고 생일선물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기 자식들의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자기 자녀의 교육을 전혀 지원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공직도 아닌 교육감이 되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자신이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고변호사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전 부인과의 불화가 너무 깊어서 아이들을 보러 갈 엄두가 안 났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가끔씩 전화도 안했다면 부성애를 의심받을 만하다. 딸의 공격에 대해 그는 “몇 년에 한번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 만났다”고 해명했다. 한해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을 ‘몇 년에 한번’ 봤다면 아버지와 자식 간의 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똑똑한 그가 알지 못한 사실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기대하던 아빠 사랑을 못 받으면 서운함이 쌓여 분노가 된다는 사실, 한없이 약해 보이는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되어 나름대로 작성한 ‘아버지 성적표’를 들이민다는 사실이다.
엄마들의 성적표는 대개 좋지만 아버지의 경우는 다르다. 모성애는 본능이어서 엄마들은 아이들부터 챙기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반면 남성들은 사회적 경제적 성취가 우선이어서 종종 자녀들이 뒷전으로 밀린다. 출세하고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버지로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곁에 없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없는 아버지’일 뿐이다. 결석이 잦으면 성적표가 좋을 수 없다.
‘아버지 성적’ 잘 받는 비결은 항상 아버지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아버지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느낌이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같은 존재가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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