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증세라도 걸린 걸까. 먼 바다에서 들려오는 해일 소리. 그 엇박자의 거대한 붉은 함성이 또 다시 들리는 것 같다. 6월. 월드컵이 열리는 해의 6월이면 찾아오는 증세다.
“뜨거운 정도가 아니다. 온 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온통 월드컵 이야기뿐이다. ‘대~한민국!’- 그 한 마디에 모든 걸 잊은 것 같다.” 월드컵 시즌만 되면 ‘축구공화국’이 되는 나라. 그 대한민국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 열기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그러면서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되새겨진다. ‘축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다. 거기에 하나 더. 월드컵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한국인에게는 특히.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인간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욕망과 야만의 전쟁터다.’ ‘축구는 스포츠가 아닌 전쟁이고 때로는 이데올로기다.’ ‘축구는 인민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아편이다.’축구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민족정서, 문화, 종교, 이데올로기 등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해서 내려진 정의로 이제는 고전(classic)이 되다시피 한 한 쪽에서의 정의다.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에 따라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고 ‘그들’에 대한 적의를 ‘공차기’란 비폭력적 형태로 분출시키는 소리 없는 전쟁이다.” 계속 이어지는 분석으로 축구는 한 나라를 읽는 주요 코드이기도 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축구는 실패한 스포츠’란 단죄도 서슴지 않는다. 과연 그런가.
‘아주 심플한 게임이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게임이다’- 축구에 대한 일반의 시각이자 보편적 정의다.
“물 흐르듯 전개된다. 그 가운데 경쾌한 리듬감각에 특유의 개인기를 갖춘 선수들이 순간동작을 통해 골대를 향해 환상의 슛을 날린다. 그 동작, 진형의 흐름은 그 자체가 미학의 절정이다. 선수와 관객이 공을 매개로 어울리는 축구장의 모습은 축제의 향연이다.”
명(明)이 있으면 암(暗)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바람을 타기 쉬운 것이 축구라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는 건전한 놀이문화로 보아야 한다. 축구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의 저자 요한 호이징하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로 파악하면서 유희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그 자체로 재미가 있어야 한다. 둘째 규정된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규칙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삶은 유희, 다시 말해 놀이 그 자체이고 축구는 유희가 본질인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게임이다.
그 연장에서 1863년 10월26일을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날로 축구예찬론자들은 간주한다. 이날 런던에서 한 모임이 있었다. 거기서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결성되고 뒤이어 제정된 게 축구의 룰이다. 지역마다 들쑥날쑥한 룰을 13가지로 정리해 발표한 것.
그 소책자를 멜빈 브래그 같은 문명비평가는 뉴튼의 ‘수학의 원리’ 등과 함께 세계를 움직인 12권의 저서 중 하나로 취급한다. 간단한 룰의 축구, 그 축구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면서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계층, 국가, 인종, 이념, 종교의 벽을 넘게 하는 문명의 에너지다.’ ‘축구는 평화의 상징이다.’ 축구는 국가와 국가 간의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의 표현이다.’ 축구에 쏟아지는 상찬이자 오늘날의 일반적 정의다.
축구는 실패한 스포츠가 아닌 ‘성공한 스포츠’란 선언이다.
그 축구가 자칫 ‘실패한 스포츠’가 될 위기에 처했다. 그것도 ‘축구가 민족 혼(魂)’으로 불리는 나라, 브라질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나오는 소리다. 사상 최대의 자금이 투입된 월드컵이다. 얼마라 했던가. 110억 달러라고 했나. 그런데 준비가 엉망이다. 정치권력의 부패 때문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2022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카타르가 선정될 당시 거액의 뇌물이 오간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승부조작, 심판매수 등의 비리가 포착되면서 FIFA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앞서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월드컵은 한국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여전히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전쟁터’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 축구장이 썰렁할 정도다. 그러다가 국가 대항전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붉은 함성이 진동하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혹시 ‘광장병’이 또 다시 도지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툭하면 떼 지어 거리로 나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그 ‘광장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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