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예비선거 다음날인 4일 아침 커피 룸에서 한 동료직원과 마주쳤다. LA에서 20마일 쯤 떨어진 곳에 사는 그는 전날 투표 마감시간에 맞추려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고 말했다. 거의 문 닫을 즈음 그가 투표소에 도착하자 자원봉사 하던 한인 여학생이 반색을 하며 맞이하더라고 했다.
“아저씨, 코리안이지요? 아저씨가 두 번째예요. 하루 종일 코리안은 한분밖에 없었어요.”
그는 여학생이 말하는 또 다른 코리안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아내가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투표소에서 투표한 한인은 그 부부뿐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가 사는 작은 도시는 한인 인구가 특별히 많은 지역은 아니다. 투표소가 한군데만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우편투표를 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을 모두 감안해도 “한인들이 이렇게 투표를 안 하는가?” 싶은 실망감은 지우기 어렵다. 마침 그날은 한국에서 6.4 지방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그는 말했다.
“(한인들) 관심이 온통 한국선거에만 쏠려 있어요.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중간선거의 해에는 원래 투표율이 낮기 마련이지만 이번 예비선거에서는 유난히 낮았다. LA 카운티의 경우 등록 유권자 486만 5,000명 중 투표한 사람은 64만이 못되었다. 투표율이 14%도 안 된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 예비선거에서는 LA 카운티 440만 등록 유권자 중 22%가 투표를 했고, 이전 중간선거인 2010년의 예비선거 투표율은 23% 정도였다. 그때도 번번이 낮은 투표율이 지적 되었는데 이번에는 민주주의 국가의 투표율이라고 말하기도 민망스러운 수준이다.
올해 선거는 몇 지역 제외하고는 밋밋한 선거이기는 하다.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니고, 주지사 선거는 하나 마나 ‘제리 브라운 재선’이고, 그렇다고 달리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달려가게 만들 뜨거운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인 유권자들의 투표율도 좋았을 리는 없다. 구체적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잘해야 전체 투표율 수준일 것이다.
이렇게 투표율이 낮으면 선거결과는 어떻게 될까? 지역구민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투표한 소수가 결과를 좌지우지 하게 된다.
1년 전 실시된 LA시 선거를 보자. 180만 등록 유권자 중 투표한 사람은 42만 명이 채 못 되었다. 투표율은 23.3%. 인종별, 민족별로 투표율이 모두 비슷하다면 그나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투표한 사람들 중 50%는 유태인이었다는 것이 유태인 커뮤니티의 분석이다. ‘표’만으로 보면 LA 인구의 절반이 유태인인 셈이다.
결과는 유태인들의 LA 시정부 장악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선출된 에릭 가세티 시장, 마이크 퓨어 시 검사장, 론 갤퍼린 시 회계감사관이 모두 유태계이다. LA의 60만 유태인 커뮤니티는 사상 처음 유태인 시장이 탄생했다고 환호했었다.
미국의 유태인 인구는 650만, 전체 인구의 2%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표를 계산할 때는 보통 전체 유권자의 4%를 잡는다. 타민족과 비교해 투표율이 월등하게 높기 때문이다. 정치헌금 또한 엄청나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만큼 돈은 주로 민주당 쪽으로 간다. 민주당에 기부되는 매 1달러마다 45센트는 유태인 돈이라는 분석이다. 공화당 후보에 대한 기부도 차츰 늘고 있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유태인과 사소한 연관성이라도 찾으려고 애를 쓰는 이유이다. ‘표’ 있고 ‘돈’ 있는 그들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유태인들은 왜 이렇게 투표에 열심일까? 한 유태인 컬럼니스트는 이를 ‘티쿤 올람(Tikkun Olam)’ 개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히브리어로 ‘세상을 고친다’ ‘세상을 치유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잘못된 부분들을 고치고 불의를 바로 잡아 정의로운 세계를 만들 의무가 인간들에게 있다고 보는 유대주의 사상이다. 이런 생각이 유태인들의 의식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공직 진출에도, 투표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LA의 민족학교에 따르면 LA 카운티 한인 등록유권자는 7만 명이다. 숫자로 보면 이번 예비선거 전체 투표자의 1/9에 해당한다. 만약 한인들이 똘똘 뭉쳐 100% 투표한다면 지금처럼 전체 투표율 낮을 때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50%만 확실히 투표해도 커뮤니티에 대한 후보들의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한인 유권자는 수적으로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투표를 안 하면 소용이 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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