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창흠(논설위원)
졸업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학생이 규정된 교과과정을 모두 끝마침, 일정한 단계를 지나 어떤 일이나 기술 따위에 익숙함(정통함)으로 명기되어 있다.규정된 교과과정을 모두 끝마치는 졸업은 정규학교의 졸업을 말한다. 또한 어떤 일이나 기술 따위에 익숙해지는 졸업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단체에서 직무를 마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전엔 없지만 우리네 삶의 마감을 의미하는 죽음을 인생졸업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지낸 필자는 졸업시즌인 5, 6월이 되면 지나간 졸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회, 추억 그리고 새 출발에 다짐하는 각오 등을 떠올려보곤 한다.
졸업식마다 해방감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감으로 한껏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데 따른 술렁거림을 맛보았고, 졸업을 통해 ‘마침’과 ‘시작’을 반복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예전의 국민학교) 졸업은 유독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긴 시간 정을 붙여왔던 학급친구, 선생님 등 모든 것들과 최초로 이별하는 날이었으니까. 그래서 일까. 초등학교 졸업식은 3년 만에 하는 중고 졸업과는 견줄 수 없는 감회가 마음에 깃들어 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어린 시절을 마감하는 데서 오는 묘한 슬픔과 청소년이 된다는 뿌듯함이 뒤섞이는 데서 오는 감정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기 때문인가 보다.
교복을 입고 생활했던 70-80년대 중고교 졸업은 헤어짐의 아쉬움보다는 해방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시절은 ‘명문고, 명문대’란 목적을 향한 무한경쟁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던 때였다. 그래서 그 당시 졸업식은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거나, 생존게임의 승자들만이 즐기는 축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 보니 3년간 함께 한 친구, 담임, 학과목 담당 교사들과 작별하는 아쉬움보다 ‘진학’에 따른 스트레스와 억압에서 풀려나는 해방감이 훨씬 크게 다가왔지 않나 싶다. 교복을 찢고,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던지는 등의 씁쓸한 졸업식 뒤풀이에서는 주인공이 되고 싶기도 했지만 관객으로 그친 아쉬움(?)도 남아있다.
대학졸업 때는 학생신분을 최종적으로 벗어 ‘어른’의 타이틀을 갖고 사회로 진출하는 통과의례였기에 진정한 자기의 삶을 사는 제2의 인생출발점에서 ‘선택과 책임’에 관해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던 기억뿐이다. 머뭇거리거나 전력질주하지 않고 주춤거리면 인생여로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었기 때문일 게다.
이처럼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는 이제는 미국으로 이민 와서 신문사와 인연을 맺은 뒤 2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직장에서 언론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제 학창시절이 아닌 언젠가 다가올 평생직장에서의 은퇴라는 졸업과 죽음이 가져오는 인생졸업만을 남겨둔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새들러 박사는 은퇴 후의 삶은 덤이 아닌 ‘제3의 인생(Third Age)’으로 지칭하며 평균수명이 길어져 가지게 된 은퇴 후 30년의 삶을 ‘뜨거운 인생(Hot Age)’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은퇴라는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책 쓰기, 여행 다니며 사진 찍기, 주중 골프 등등)들을 하면서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소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아내, 자녀, 벗들과도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은퇴 후 맞이하게 될 제3의 인생과 함께 멋진 인생졸업을 위해 그동안 살아온 삶을 차분한 마음으로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처럼 졸업시즌을 맞아 학창시절의 졸업을 떠올리며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해보니 훗날 다가올 은퇴 후의 삶과 인생의 졸업을 멋지게 맞고자 하는 젊은 시절의 열정이 불끈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은퇴와 인생 졸업을 앞둔 이들에게 권해본다.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지 미리 계획과 목표를 세워보라고. 인생졸업도 여유 있게 생각해보라고. 그리고 그동안 ‘나’란 존재와 ‘나의 사람’으로 지내온 가족, 친지와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라고. 되돌아 갈 수는 없지만 되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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