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막 시작된 1905년을 물리학계는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26살 무명의 과학자가 몇 주 간격으로 연달아 4편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로 인해 물리학계의 지축이 뒤흔들리면서 현대 물리학이 태동되었다.
‘기적의 해’ 혹은 ‘경이의 해’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20세기 물리학의 기초가 된 (특수)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설 등 역사적 논문들을 그해에 그가 발표해서 정확히는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로 불린다.
일반 과학자들은 평생에 한편 건져내기도 힘든 위대한 논문을 4편씩이나, 그것도 불과 몇 달 사이 한꺼번에 완성해낸 그 엄청난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보통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천재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천재에게도 ‘생산성 곡선’은 있다. 천재적 업적이 평생 고르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점에 정점을 이루고 이후 줄어드는 곡선을 이룬다.
그렇다면 무엇이 천재들의 천재성을 활화산처럼 뿜어 오르게 만드는가. 수년전 영국 캔터베리 대학의 사토시 가나자와 교수가 이를 연구했다. 전 세계의 위대한 과학자 280명의 일대기를 조사한 그는 남성 과학자들의 2/3가 30대 중반 이전, 대개 20대에 자신의 최고 연구업적을 이뤄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이전 대표적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 것은 23살 전후였다. 아인슈타인은 “30세 이전에 과학에 위대한 공헌을 하지 못하면 평생 가도 못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20대~30대 중반은 남성으로서 가장 팔팔한 나이. 남성호르몬이 가장 왕성하게 분비되는 이 시기에 과학적 생산성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이성을 매료시키려는 강한 욕구 때문이라고 가나자와 교수는 설명했다. 이성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어 배우자로 삼고 싶은 본능이 성취욕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기적의 해’인 26살 때 신혼이었다. 신부는 취리히 폴리테크닉 대학동창인 밀레바 마리치. 물리학 책을 같이 읽고 같이 공부하면서 친구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연인이 물리학을 이해하는 만큼 청년 아인슈타인은 어떤 위대한 연구로 그를 감동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했을 법하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 범죄자들에게서도 비슷한 ‘곡선’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천재와 범죄자는 기질적으로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범죄자들 역시 30대 중반이전에 범죄활동이 최고조에 달하며 이 역시 이성을 매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가나자와 교수는 설명했다.
천재는 천재의 방식으로, 범죄자는 범죄자의 방식으로, 보통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의 본능을 엄청난 열정으로 누군가를 향해 분출해내는 것이 청춘이고 우리 대부분 그렇게 열띤 존재로 청춘의 시기를 통과한다.
만약 세상 어디에도 분출구는 없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될까. 비상구를 찾는 심정으로 분출구를 갈망하던 청년이 광란의 살인극을 벌이고 자폭했다. 지난 23일 밤 샌타바바라 인근에서 일어난 엘리엇 로저(22) 사건이다. 샌타바바라 시립대학생인 그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과 세상의 여자들을 심판하겠다며 6명을 죽이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가 시작돼 한창 들떠있던 샌타바바라 일대는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이번에도 문제는 치료되지 않고 방치된 정신질환, 정신질환자 손에 총기를 안겨준 구멍투성이 총기규제였다. 이전의 총기난사 사건들과 구분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증오가 사건의 배경이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남긴 비디오에서 그는 한번도 여자와 사귀어본 적이 없어서 22살 되도록 키스 한번 못해봤다며 비통해했다. “사춘기 이후 8년 동안 고독한 존재로, 거부당한 채, 채워지지 않는 욕망 속에 살아야 했다. 이 모두가 여자들이 나에게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에 대한 응징을 하겠다고 말했다. 남성호르몬이 왕성한 나이에 이성을 향한 사랑의 본능은 강렬한 데 단 한 여성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키운 것 같다. 그를 이해해주고 받아준 이성 친구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사람은 알고 보면 단순한 존재이다. 곁에 있는 한 사람 때문에,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혼신을 다해 일하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20대의 아인슈타인에게 밀레바 마리치가 없었다면 ‘기적의 해’도 없었을 지 누가 아는가. 한 사람의 힘이 크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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