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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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직전인 지난 4월 초 한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이슈는 계모에 의한 의붓딸 사망사건들이었다. 피의자들이 예상보다 낮은 형을 선고 받자 언론들은 ‘계모 의붓딸 학대 사망사건’이라는 제목 아래 들끓는 국민 분노를 앞 다퉈 전달했다. 이런 제목을 반복해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계모와 의붓딸이라는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계모=아동 학대범’이라는 낙인을 찍게 된다.
하지만 전국의 수많은 계모들 입장에서는 화가 많이 나고 억울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낙인의 내용이 진실 혹은 사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실태조사를 보니 한국에서 지난해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가운데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이 가운데 친부와 친모에 의한 학대가 95%에 달했다.
계모나 계부가 저지르는 학대도 있겠지만 부모 같지 않은 친부모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세상의 그릇된 낙인과 시선 때문에 계모들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낙인찍기의 대상은 물론 계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느 사회에서나 낙인찍기는 존재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사회의 낙인찍기는 거의 병적인 수준이다. 낙인이 횡행하는 사회들에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집단주의 사고가 강하고, 서로의 다름을 잘 용인하지 못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것은 쉽게 낙인찍기의 대상이 된다.
범죄 전과, 출신 지역, 이념, 경제적 처지, 외모 등 낙인찍기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행위’에 대한 낙인찍기는 그나마 이해해 줄만한 구석이 조금 있지만 ‘처지’에 대해서까지 부문별하게 자행되는 낙인찍기는 맹목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또는 부모가 있는지, 그리고 가난한 집안인지 등 개인의 의지나 선택과 무관한 상황을 놓고도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낙인을 찍어대는 곳이 한국사회다.
지난해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레미제라블’은 인간 승리의 서사이지만 동시에 주인공 장발장을 끈질기게 옥죄었던 전과자라는 낙인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찍는 낙인이 당사자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족쇄가 되곤 한다. ‘낙인효과’라는 말이 있듯 낙인을 찍으면 그 대상이 실제로 그렇게 변하기까지 한다. 낙인은 그래서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다.
낙인찍기를 좋아하는 인간들 마음속을 들어가 보면 몇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낙인찍기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적인 방어기제로 사용한다. 또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음으로써 자신들의 우월감을 확인하려 든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것은 열등감의 표출일 뿐이다. 가학성은 말할 것도 없다.
분별력을 상실한 일부 보수세력이 벌이는 ‘종북몰이’는 이런 낙인찍기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념적인 스펙트럼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은 채 자신들과 견해가 다르고 진보적이다 싶으면 ‘종북’으로 싸잡아 낙인찍는다. 한국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명칭의 낙인을 만들어 내며 보수에 의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돼 왔다.
평소 진보적인 소신 발언을 자주해 보수로부터 종북좌파 낙인이 찍힌 연예인 김제동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로부터 북한에 가서 살라는 비난을 자주 듣는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자신의 고향은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기 때문에 북한 가서 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유머러스하게 받아 넘긴다. 코미디 같은 낙인찍기는 역시 코미디로 맞받아쳐야 제 맛이 난다.
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받아 넘길 힘도 없고 해명할 처지도 못 되는 수많은 낙인찍기 피해자들은 그대로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세월호 참사 후 일부 극우인사들은 유족들까지 선동꾼으로 모는 몰지각한 행태를 보였다. 이것은 대단히 잔인하고도 후진적인 폭력이다.
낙인의 내용과 진실 간의 거리는 그 사회가 ‘소통’ 그리고 ‘성숙’이라는 가치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테크놀러지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인터넷과 SNS를 통한 무문별한 낙인찍기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국사회를 결코 수준 높은 성숙사회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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