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한국 언론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사회와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경영상 어려움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언론의 생명이자 존재이유라 할 신뢰성이 완전히 땅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특히 세월호 대참사를 겪으면서 수많은 국민들은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을 생생하게 봐버렸다.
독자적인 시각으로 접근해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파헤치기보다는 정부의 발표를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쓰고, 경쟁하듯 오보를 쏟아내며 미확인 보도들을 양산하는 행태에서 ‘야성’이라는 언론의 기본 DNA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보도와 일부 언론사 간부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언론인들을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뜻의 속어)로 비하해 부르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공영방송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콩가루 분란은 한국 언론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방송사의 젊은 보도국 기자들은 지난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왜곡 편파 보도를 반성한다”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잇달아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기레기 중의 기레기’라고 지칭했다. 자괴감을 담은 통렬한 반성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여파가 커지면서 보도국장은 결국 사임했다. 그런데 보도국장은 사임발표 회견에서 “대통령만 바라보며 평소 끊임없이 보도통제를 해 온” 사장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언론이라는 조직 역시 구성원들의 집합체인 만큼 명령과 통제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가치관이 ‘언론다움’을 결정짓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특종은 일선 기자들의 끈질긴 취재의 결과물이었지만 사주와 편집국장의 과감한 결단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은 이러한 속성을 잘 꿰뚫고 있다. 그래서 정권을 잡으면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공영방송 책임자 자리에 정권에 순종적인 인사들을 앉히려 기를 쓰는 것이다. 사장은 인사권을 쥔 정부에 충성하면서 자신도 인사권을 앞세워 내부를 통제하려 든다. 서로의 필요가 자리와 정권 홍보의 교환을 통해 충족된다.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은 비단 방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문도 다르지 않다. 본분은 뒷전으로 한 채 사익을 추구하고 보호하는 데 몰두해 온 것이 많은 신문들의 과거와 현재이다. 권력은 이권을 던져 주고 그 대가로 신문은 권력의 맨 얼굴에 분칠을 해 주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국민들이 정말 알아야 할 사안은 가리거나 교묘히 왜곡하고, 권력자의 이미지와 홍보를 위한 기사들은 홍수처럼 쏟아낸다. 그런 가운데 국민들은 기만당하고 조작된다.
권력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언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역사적 사례가 19세기 초 프랑스 신문이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자 ‘코르시카의 살인귀가 프랑스에 상륙했다’는 기사가 나갔다. 이후 나폴레온이 파리에 가까워질수록 제목은 ‘살인귀’에서 ‘장군’으로, 또 ‘황제 폐하’로 바뀌었다. 현재의 한국 언론은 당시 프랑스 신문의 나약하면서도 시류 영합적인 태도와 많이 닮아 있다.
권력과 언론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생태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은 아무리 아름답게 색칠해도 여전히 부실한 건물일 뿐이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안전검사관이 문제점을 찾아내 주인이 이를 고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관료와 업체 유착보다 더 위험한 것이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다. 언론이 사회 곳곳에 잠복해 있는 위험과 부조리를 파헤치는 일보다 권력 지키기와 대통령 이미지 만들기에 몰두해 온 최악의 결과가 이번 세월호 참사이다. 아무리 가려줘도 터질 일은 터지게 돼 있다.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지사적 결기와 강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언론인에게는 일반 직장인이나 생활인과는 조금 다른 멘탈리티가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언론은 권력의 파수꾼이 아니라 애완견이라는, 또 언론인들은 언론사에 속해 있는 임금 노동자일 뿐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를 완전히 개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 개조 대상에는 언론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언론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공영방송의 어린 기자들처럼 뼈저린 반성문을 써나가야 한다. 그런데 반성문은커녕 사안의 초점을 흐리는 구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니 ‘백년하청’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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