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세월호 실종자들이 다시는 못 올 길로 간 것이 확인되면서 전국민이 트라우마(trauma)에 빠져있다. ‘트라우마’는 경험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정신에 상처를 입은 것을 뜻하며 요즘은 일상용어가 되었다.
이번 사고로 아들딸을 잃은 참척을 당한 가족들은 가슴에 피멍이 들었고 구사일생 살아난 학생들은 눈앞에서 죽어간 친구들, 스승의 모습이 청소년기의 악몽으로 자리잡아 평생 괴로울 것이다.또 유령의 집으로 변한 여객선에 들어가 처음 시신을 대하는 잠수부들, 사고 당한 학생들과 같은 나이의 청소년들, 또래 자녀를 둔 엄마 아빠들, 비슷한 나이 손자손녀를 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리고 종일 뉴스를 보며 애타하는 국민들, 해외동포들도 이번 일로 트라우마를 입었다.
어떤 이는 “한국민은 지금 국상 중”이라고 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한국이 실제론 모래성위에 지은 것이었다”며 실망감, 분노, 불신, 무력감으로 힘들다고 한다.안전관리감독 미비, 상식도 없는 무리한 운항, 우왕좌왕하는 구조대책에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실수 등등, 후진국형 참사에 울고 화내다보니 수면장애, 두통에 우울증까지 온다는 전국민이 빠져버린 트라우마, 어떻게 건져내어야 할 까.
가장 먼저, TV를 끄고 일어나 더 이상 화내지 말고 술도 마시지 말고 밥을 챙겨먹고 바깥 봄바람도 쐬면서 기분을 돌려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우울 모드로 일관된 뉴스를 보여주지 말고 사고에 대해 알려는 주되 ‘네가 자라서는 이런 실수가 없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자.
정부는 이번 사고를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지는 한편 희생자 가족과 전 국민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지된 행사와 운동회도 다시 열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세월호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그동안 전 세계에 한류 물결을 일으키며 결사적으로 노력해 온 외교적, 문화적 활동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국격이 땅에 떨어져버렸다. 세월호 뉴스가 외국 TV와 신문, 인터넷 뉴스에 나오면 부끄럽다.그래도 현장으로 달려가 뒤에 숨어서 희생자 가족에게 밥을 챙겨주고 빨래를 해주는 자원봉사자들, 가족을 잃은 이웃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동네사람들, 이들로 인해 한국민들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존재한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에 개인이 어느 정도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울증도 오고 가볍게 지나가기도 한다.
뉴욕에 사는 우리들은 2001년 9월11일 화요일 오전 9.11테러를 겪었다. 본인도 신문사 편집국 유리창으로 불타는 쌍둥이 빌딩을 보면서 아침 회의를 준비하다가 “어, 어...”하는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빌딩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순간을 목격했다. 빌딩이 서있던 자리는 시커먼 뭉게구름만 자욱하니 남아 있다가 나중에는 텅빈 하늘이 보이던 광경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사건 후 일주일간 뉴요커들은 문밖에서 큰소리만 나도 테러인가 의심했고 불안하여 공공장소에 가질 않았다. 그러나 당시 부시 대통령과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일상생활로 돌아가 샤핑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도 가질 것을 호소했고 사람들도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뉴욕에 살다보니 9.11테러를 당하고 기차나 전철에서 사람이 치어 죽거나, 강도를 당했거나 등등의 사건이 수시로 발생하는 것을 본다. 세상을 살면서 트라우마를 한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운이 좋다. 피치 못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빨리 충격에서 헤어나야 하고 트라우마 극복이 힘들다면 정신심리적 치유상담을 받고 필요에 따라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이다.
뉴욕 뉴저지 한인들도 세월호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면 뉴스 접촉을 최소화 하고 멀리서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에 살아난 단원고 학생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뉴욕동포 장학금이나 뉴욕방문 여행 등을 주선하여 ‘넓고도 아름다운 세상’, ‘따뜻하고 배려깊은 동포애’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루빨리 한국민의 울적한 삶이 밝게 회복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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