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어른들 때문에 생때같은 어린 생명들이 무수히 희생됐다. 세월호 침몰은 재난을 초래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조건들이 한꺼번에 작용해 일어난 최악의 인재다.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의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 대참사이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이 과거의 참사들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고 있다.
참사가 발생하자 언론들은 온갖 문제점과 원인들을 들먹이며 막을 수 있는 재난이었음에도 막지 못했다고 질타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모든 언론매체들은 ‘예고된 인재’였다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후견지명’(hindsight)에 매몰된 진단이었다.
상황을 미리 예견하는 ‘선견지명’(foresight)과 달리 ‘후견지명’은 일이 발생한 후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떠들어 대는 것을 말한다. 후견지명이 판치는 사회에서 참사가 발생하면 한동안 중구난방식의 질책과 대책 제시가 이어지다가 슬그머니 목소리가 잦아든다. 그리고 참사는 반복된다.
재난 예방이 수습보다 더 중요함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건강을 지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예방 노력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당장의 효율성을 먼저 따지는 사회에서 이런 노력은 얼핏 비경제적으로 보일 수 있다. 선견지명이 작동하지 않으면 자연히 예방에 소홀하게 된다.
재난 예방을 가볍게 여기는 인간들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중국 고전인 ‘한서’에는 남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나그네 얘기가 나온다. 나그네가 우연히 보니 그 집 굴뚝이 너무 똑바로 세워져 있어 가끔 불길이 새어 나오고 굴뚝 옆에 땔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그네는 집 주인에게 불이 날 위험이 있으니 굴뚝을 구부리고 땔감도 옮기라고 조언했지만 주인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나그네가 걱정했던 것처럼 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나서 불을 꺼주자 주인은 이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잔치를 벌였다. 잔치에 참석한 한 동네 주민이 일어나서 이런 말을 했다. “공을 논하면서 바른 말로 충고해 준 사람은 언급도 않고 불 끄다가 이마 다친 사람만 대접하고 있군요.” 여기서 나온 말이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긴다는 뜻의 ‘곡돌사신’(曲突徙薪)이다. ‘곡돌사신’은 예방의 지혜와 공로를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조선은 이율곡의 10만대군 양병설을 일축했다가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화를 겪어야 했다. 그런데 한 논객은 만약 선조가 이율곡의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가정 아래 이런 상상을 펴본다. 조선이 10만대군을 양성하자 부담을 느낀 일본은 침략 야욕을 접는다. 조선은 평상시처럼 평화롭다. 그러자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율곡이 쓸데없는 짓을 해 국가 재정을 어렵게 했으니 그 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율곡은 귀양길에 오른다.
가상의 이야기지만 이처럼 선견지명은 어디서나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한다. 또 선견지명의 공은 제대로 인정받기도 힘들다. 대부분 일이 일어나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후견지명만 난무한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참화 대부분은 선견지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였다.
이번 참사를 놓고 또 다시 성급한 진단과 결론을 내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우선 참사 수습에 힘을 모은 후 정부와 민간이 같이 참여하는 대규모 조사단을 꾸려 오랜 시간을 갖고 무엇이 이 같은 재앙을 초래했는지 냉정히 철저하게 조사해 ‘세월호 참사 백서’를 발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백서는 대한민국 모든 재난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로 활용돼야 한다.
사실 참사 발생 후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최악의 재난이라 할 전쟁이 일어날 경우 얼마나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전쟁 상황에서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들은 세월호 승무원들보다 과연 얼마나 더 나을까 라는 불신이 살짝 고개를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선견지명과 후견지명 중 무엇이 승해야 선진국 소리를 들을지는 자명하다. 대한민국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뒷북치는’ 사회에서 ‘내다보는’ 사회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그것만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을 그나마 헛되게 하지 않고 영령들에게 사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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