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자 현혹하는 ‘앵커링 법칙’
▶ 높은 가격 부르고 깎아주는 딜러의 전략, 세일 ‘구입수량 제한’ 하면 더 많이 팔려, 고객들은 처음 접한 정보 따라 마음 좌우, 연봉 협상 등 금액 먼저 제시하는 쪽 유리
고객들이 한 자동차 딜러에서 승용차를 살펴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은 특정 기사내용과 관계 없다).
이런 광고의 의미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딜러에서는 자동차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고 이 가격에서 7,500달러를 깎아주는 것이다. 평범한 것 같지만 고객들은 이런 딜러의 전략에 곧잘 말려들곤 한다. 이같은 현상을 전문용어로 ‘앵커링 법칙’(anchoring)이라고 한다. 딜러로서는 일단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한 셈이지만 고객들은 자칫 시간만 낭비 할 수 있고 심하면 ‘바가지’ 상술에 당할 수 있다.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학자들은 ‘앵커링’이라는 의미는 처음 접한 정보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첫 정보가 실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선입견에 사로 잡혀 그 정보의 굴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마켓에서 물건을 팔 때 ‘구입 수량 10개 제한’이라는 문구를 내걸면 신기하게도 고객들은 앞 다퉈 3~4개는 산다는 것이다. 평소 고작 1~2개씩 사던 고객들이 이 문구를 보고는 왕창 사들인다.
소매점에서 10달러 상품이라며 30% 세일한다는 문구를 붙이면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한다. 실제 소매점에서 평소 7달러 또는 6달러짜리 물건을 10달러로 올린 것인데도 사람들은 10달러를 30% 세일한다는 말에 마음이 끌려 물건을 집게 된다.
▲앵커링 법칙
앵커링은 주로 돈과 관련된 우리 일상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딜러가 자동차 가격을 2만달러라고 말해 놓고 고객이 원한다면 1만5,000달러까지 깎아줄 수 있다고 한다면 고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변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자.
딜러에서 자동차 가격을 처음부터 1만5,000달러라고 밝혔을 때보다도 고객들은 훨씬 더 좋은 가격에 흥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뿌듯한 기분을 갖게 될 것이다. 앞서 던진 2만달러가 바로 고객들을 걸기 위한 ‘앵커’다. 고객은 가격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5,000달러를 절약했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딜러들은 이런 점을 십분 이용해 자동차를 판매한다.
물론 대부분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높은 가격을 부르고 난 후에 깎아주는 딜러의 판매전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 절대 당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동학자들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못을 박는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점은 확신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전략에 쉽게 걸려들고 실수를 자주한다.
‘앵커링 법칙’은 행동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네만이 1970년대 처음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카네만은 두 그룹에게 ‘8×7×6×5×4×3×2×1’ 또는 ‘1×2×3×4×5×6×7×8’의 문제를 각각 하나씩 주고 추산치를 대답하도록 했다. 결과는 8부터 시작되는 곱셈 문제를 받은 사람들의 답변은 평균 2,250이었고 반면 1부터 시작되는 곱셈 문제를 받은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적은 평균 512라고 말했다(답은 40,320이다). 첫 숫자인 8과 1의 영향에 따라 추산치가 달라진다.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한 시험 결과도 흥미롭다. 부동산 에이전트들은 마켓에 내놓는 주택가격을 결정하는데 지나치게 자신감을 내세우는 경향이 많다. 경험상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를 판단하는데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셉 가넴 로욜라 교수는 한 저서를 통해 주택가격 결정에 자신 있다고 말하는 부동산 에이전트들조차도 ‘앵커링’ 효과에 빠진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부동산 에이전트들에게 동일주택이지만 리스팅 가격이 다른 2개의 주택정보 패키지를 주고 마켓가격을 정해 보라고 요청했다. 두 패키지는 해당 주택에 대한 동일한 정보가 담겨 있고 리스팅 가격만 다르다.
리스팅 가격을 11만9,000달러로 적은 패키지를 본 에이전트들은 평균 11만4,000달러로 해당 주택을 감정했다. 반면 14만9,000달러로 리스팅을 적은 패키지를 받은 에이전트들은 동일한 주택인데도 12만8,700달러로 높은 가격을 예상했다. 다시 말해 동일한 주택을 가격만 달리해도 에이전트들은 제시된 리스팅 가격의 영향을 받아 3만5,000달러의 감정가 차이를 낸 것이다.
하지만 에이전트들은 다행스럽게도 자신들이 동일 주택을 평가할 때 리스팅 가격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가넴 교수는 “조사대상 부동산 에이전트 중 10%만이 리스팅 가격을 주택가격 감정에 고려했다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앵커링 법칙이 전문가들도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잘 이용하면 실리 챙겨
앵커링이 소비자 입장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믿거나 말거나 가격뿐 아니라 봉급계약을 할 때도 먼저 금액을 제시하는 쪽이 유리하다.
취업 때 또는 연봉 협상 때 1,000달러 더 받고 싶다면 일단 1,500달러 또는 2,000달러를 더 요구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2만달러에 사고 싶으면 우선 1만6,000달러를 부른다. 아마 딜러에서 어이가 없다며 웃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7,500달러 세일가격으로 준다는 광고를 보고 소비자들이 웃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딜러에서는 아마 적정선에서 딜을 하려고 할 것이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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