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배럴에 이르는 미국의 전략비축 석유를 국제 시장에 방출하라. 그에 따른 석유가 하락은 러시아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 줄 것이다.”
크림반도 사태와 관련해 국제적으로 저명한 한 에너지 전문가가 공개적으로 내건 제안이다. 국가안보를 위한 석유의 전략비축 같은 것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주장과 함께 이 같은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연방에너지부는 현재 계류 중인 25건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 건설안을 즉각 승인해야한다.”
비슷한 시점에 나온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이다. 천연가스수출로 미국에 1달러가 들어올 때 마다 푸틴의 경제는 1달러씩 손실을 본다는 셈법을 제시하면서 LNG수출을 전면 확대하는 것이 확실한 응징방안임을 주장한 것이다.
불과 5년 전만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에너지 자원은 고갈돼가고 있다는 것이 그 때만 해도 하나의 상식이었으니까. 그 상식이 그런데 뒤집어 진 것이다.
“비전통적인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증가와 함께 세계의 경제지도는 영구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지난해 가을 포린 어페어지가 내린 선언이다.
“미국의 에너지 붐이 장래에 얼마만큼 영향을 가져올지 사람들은 아직 실감을 못하고 있다.” “국제 석유가는 머지않아 배럴당 75달러 이하 시대를 맞을 것이다.” “북미지역은 1973년 욤키퍼 전쟁이후 40년 만에 에너지 독립시대를 다시 맞이할 것이다.” 이후 계속 나오고 있는 주장에, 전망들이다.
꽤나 획기적인 이 같은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는 그러면 과연 무엇일까. 심해석유(deep water oil), 셰일석유(shale oil), 그리고 석유모래(oil sand) 탐사 채굴기술 개발이다.
‘석유가 75달러 이하’전망도 그렇다. 셰일혁명으로 요약되는 이 새로운 개발에서 그 설명은 시작된다.
비전통적인 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확인된 채굴가능 석유 부존 량은 최소 1조 배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엄청난 엑스트라분의 석유는 가격하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것.
수송시장에서 석유독점시대가 종막을 고하고 있다. 전 세계가 소비하는 석유의 근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승용차에서, 트럭, 선박 등의 연료로서의 석유다. 그 연료가 비(非)석유연료로 대체되고 있다. 천연가스다.
그 뿐이 아니다. 발전소 등 산업연료로서의 석유의 비중도 계속 감소, 천연가스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 같이 공급측면은 물론 수요측면에서도 석유가 하락요인이 커지면서 75달러 이하시대를 맞이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러면 무엇을 의미하나. ‘석유독재체제’의 몰락이다. 러시아의 경우를 보자. 수출의 75%를, 정부재정의 50%를 석유와 가스수출 대금이 차지한다. 게다가 석유가 100달러시대가 계속된다는 전제하에 예산정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에너지 가격이 급락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까ㅡ “그동안의 자본유출에, 루블화 폭락은 장난에 불과하다.”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는 이야기다.
“영국의 세기인 19세기는 석탄시대였다. 미국의 세기였던 20세기는 석유 시대였다. 21세기는 천연가스의 시대가 되고 이 시대의 주역은 여전히 미국이 될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의 주장이다. 더 큰 그림으로 볼 때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변화까지 예상된다는 거다.
이미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원유생산도 사우디아라비아를 앞지르고 있다. 관련해 나오는 전망은 2020년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지역은 ‘21세기의 중동’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시장은 인도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인도-태평양지역이 된다는 전망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전 세계 에너지소비 증가분의 85%를 이 지역 국가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인도양에서 남중국해, 그리고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해역은 세계의 에너지가 몰리는 해상 고속도로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예견되는 것이 이 지역 해상에서의 긴장고조다.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에너지 수출시장을 찾으려는 러시아와 자원 확보에 급급한 중국, 두 나라는 동맹관계가 된다. 이 유라시아 동맹세력의 중심은 그러면서 에너지 수송로를 따라 점차 남하한다.
새로운 에너지 허브가 된 미국도 이 지역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마찬가지. 그 정황에서 유라시아동맹세력과 미국 중심의 서방과의 대립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내다 본 것이다.
그 때 한국의 좌표는 어떻게 설정될까. 한반도 해역에도 급물살이 몰려오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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