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역시 ‘3월의 광란’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0일부터 본격 시작된 NCAA 대학농구 토너먼트에서 광란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파란이 속출하고 있다. 듀크, 시라큐스, 캔사스 같은 전통 강호들이 하위 팀들에 덜미를 잡히면서 시즌을 접었다.
약자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이 쏠리는 인간의 인지상정과 맞물려 ‘3월의 광란’ 열기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보울링 그린 대학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특정 연고가 없는 팀들이 맞붙을 경우 80%가 약팀인 ‘언더독’을 응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나 지위 면에서 언더독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언더독이 승리했을 때 이 팀을 응원했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좀 더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는 심리연구는 약자에 대한 응원이 결국은 자신에 대한 응원과 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월의 광란’에서 하위 시드 팀이 상위 시드 팀을 잡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지난 1985년부터 지난해까지 벌어진 토너먼트 첫 라운드 경기들을 보면 11번 시드가 6번 시드를 잡은 것이 33.6%, 12번 시드가 5번 시드를 이긴 건 35.3%, 13번 시드가 4번 시드를 격침 시킨 비율은 21.6%였다. 14번 시드가 3번 시드를 이겨 파란을 일으킨 경기도 17번이나 있었다.
정치학자 이반 아레귄-토프트가 지난 200년간 벌어진 전쟁에서 강대국이 이긴 확률을 산정해 보니 71.5%로 나타났다. 세 번 가운데 한 번이 조금 못되는 28.5%의 경우에는 약소국이 승리를 거뒀다는 얘기다. 전쟁에서는 강대국이 이기게 마련이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려 주는 수치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NCAA 토너먼트에서 하위 시드가 상위 시드를 꺾는 확률도 이와 비슷하다.
데이빗 모리는 언더독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전략 컨설턴트이다. 2008년 오바마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하며 언더독이었던 오바마의 대권 획득에 일조했다. 그는 NCAA 토너먼트에서 일어난 기념비적인 이변들을 분석해 어떻게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사례로 든 것은 15번 시드 버틀러가 2번 캔사스 스테이트와 1번 시라큐스를 잇달아 격침시킨 2010년 토너먼트와, 버지니아 커먼웰스라는 11번 시드의 작은 대학이 1번인 거함 캔사스를 이긴 2011년 토너먼트, 그리고 15번 시드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 대학이 2번의 조지타운을 잡은 지난해 경기이다.
모리는 언더독이 승리하려면 ▲강팀과는 다른 게임의 규칙에 따라 플레이해야 하고(경기 내내 풀 프레스 코트 수비를 펼친 버지니아 커먼웰스) ▲자신의 강점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하며(발이 느린 조지타운을 속공으로 무너뜨린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 ▲어떤 경우에도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져야 한다(뒤지던 경기를 공격적인 플레이로 잇달아 뒤집은 버틀러)고 지적하고 있다.
모리의 결론은 독특한 시각과 글쓰기로 당대 최고의 사회분석가로 꼽히는 말콤 글래드웰의 지적과 일치한다. 글래드웰은 최근 출간한 ‘다윗과 골리앗’(이 두 단어는 약자와 강자를 대비시키는 거의 유일한 상징처럼 보인다)에서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강자가 만든 싸움의 법칙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전략을 만드는 것이 약자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절대적 약세였던 북베트남이 강대국 미국을 이긴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전쟁 뿐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약자의 승리와 강자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리는 똑같다.
약자의 승리 전략이 강자에게는 경고가 된다. 강자라고 자만하며 자신만의 룰에 갇혀 있다가는 언제 어디서 다윗의 무릿매질이 날아올지 알 수 없다. 약자의 결핍은 오히려 강점이 되고 거인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요소가 종종 약점을 낳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3월의 광란’이 매년 우리에게 되새겨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전쟁터이든 비즈니스 세계이든, 아니면 농구코트가 됐던 약자가 강자를 무너뜨리는 게 생각보다 그리 드문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30%에 육박하는 승률은 체념론을 무색하게 만든다. 결국은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작고 약하다며 싸워 보기도 전에 지레 꼬리를 내릴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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