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푸틴은 한 모임을 주도했다. 러시아 역사교과서 기술에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는 회합이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 내용은 쓰레기라는 것이 푸틴의 불만. 새로 고쳐 쓸 것을 지시한 것이다.
현행 교과서에는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이 동유럽을 점령했다고 기술돼 있다. 이게 잘 못됐다는 거다. 소련은 동유럽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해야 올바른 역사적 기술이라는 게 푸틴의 주장이다.
그리고 두 달이 못돼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합병조치를 취했다. 파시스트로부터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구실과 함께.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사를 고쳐 쓰려고 든다.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에 대한 한 가지 답이다과거사를 다시 쓴다.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다. 국가 이데올로기까지 바꿀 정도로 대대적인 공정을 펼치고 있다. 그 한 예가 사회주의 운동사 기술이다. 그 역사는 마르크스 레닌부터가 아닌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새로운 해석까지 시도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푸틴의 러시아 인가. 아니다. 시진핑의 중국이다.
시선은 온통 러시아에 몰려있다. 아직까지도. 크림반도를 전격 점령, 합병했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그 다음 수순은 그러면.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몰도바도, 에스토니아도 그 운명을 알 수 없다. ‘러시아인 보호’를 구실로 삼을 때 언제나 침공이 가능하니까. 예상은 분분하다.
그도 그렇지만 필리핀이, 대만이 더 위험 할 수도 있다. 푸틴 러시아의 크림반도합병 이후 일각에서 새삼 나오고 있는 이야기다.
중국은 러시아가 아니다. 그러니 너무 비약이 아닐까. 두 나라는 그렇지만 너무 흡사한 점이 많다. 이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소련제국 붕괴는 20세기 최악의 지정학적 파국이다.” 푸틴이 한 말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자들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지난 한 세기는 치욕의 역사였다’-. 그 치욕은 반드시 씻어야 한다. 그 방법은 부국강병에서 찾아진다. 이것이 시진핑이 제시하는 ‘중국몽(夢)’이다.
거기다가 안보강박 증세라고 할까. 그렇지 않아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그 두 나라가 공통으로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병 증세다. 국가안보를 위해(사실에 있어서는 그보다는 현 집권세력의 정권유지를 위해) 완충지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주변국가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이다.
푸틴의 말은 그냥 해본 게 아닌 것으로 결국 드러났다.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크림반도를 전격 점령 합병했다. 위대한 러시아 제국 부활- 그 꿈을 위해 마침내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왜 중국은 푸틴 러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제된 태도를 보이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푸틴은 그 멘탈리티에 있어 시리아의 아사드, 이라크의 사담, 빈 라덴, 북한의 김씨들, 리비아의 가다피, 이란의 호메이니계열에 속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대니얼 헤니거의 지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21세기가 아닌 다른 세계의 인간형으로 러시아의 스트롱 맨이다. 그런 푸틴이기에 군사행동도 가능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아직 모든 권력을 장악하지 못했다. 중국이 왜 액션에 주저하는지 그 부분적 이유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다. 미국의 태도다.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레드라인이란 걸 설정한다. 그 레드라인을 넘었다. 그래도 별다른 응징이 없다. 우방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미국이 그런 태도를 보일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거다.
중국의 매파 장성들이 호전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서방은 그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은 행동에 나섰다. 사우스 차이나해에 있는 세컨드 토마스 섬 주둔 필리핀해병 해상봉쇄 작전을 펼친 것이다.
아직은 작은 갈등에 불과하다. 그러나 크림반도 병합 사태와 관련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미국의 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결국은 워싱턴의 대응이 엄포로만 끝났다고 판단했을 때 중국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는 게 위클리 스탠다드지의 분석이다.
그렇게 되면 필리핀뿐이 아니다. 대만, 그리고 일본과 한국까지 동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결국은 양자 중 택일을 각오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 굴종, 혹은 핵 무장화. 둘 중의 하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왜 푸틴은, 또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은 과거사를 다시 쓰려는 것인가. 이유는 단 하나다. 대중의, 국민의 분노를 내부, 다시 말해 현 정권이 아닌 외부로만 돌려 거기서 폭발대상을 찾게 하려는 것이다.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꿈틀대는 동아시아가 그래서 더 위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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