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지난 2007년 세계를 대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경제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는 집이었다. 별다른 재산 증식 수단이 없는 서민들에게 ‘좀 더 많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그나마 가장 요긴한 수단은 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가격이 오르던 광란의 시기에 집은 신속하고 확실한 재산 증식의 도구였다. 대중의 탐욕에 영합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등장과 확산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런 가운데 주거공간으로서 집의 의미는 상당히 퇴색했다. 집은 재산 증식과 함께 경쟁사회에서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됐다. 큰 집에 산다는 것은 성공을 의미했으며 소유는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집의 크기가 계속 넓어져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78년 미국의 신축주택 평균 크기는 1,780평방피트였다. 그러던 것이 금융위기가 발생한 해인 2007년에는 그 크기가 2,479피트로 넓어졌다. 그 사이 가구당 사람 수가 많아진 것은 아닐 터이니 집이 커진 이유는 재산 증식과 과시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수십년간 미국을 지배해 온 이런 믿음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금알을 낳아줄 것으로 굳게 믿었던 집이 오히려 고통의 원천이 돼 버린 것이다. 수많은 가정들에서 한숨소리가 넘쳐났으며 무리해서 큰 집을 산 가정일수록 그 소리는 더욱 컸다.
어떤 사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꼭 반동 현상이 뒤따르게 돼 있다. 탐욕과 부실대출이 야기한 경제위기가 지나면서 새롭게 등장한 대표적 사회 캠페인이 작은 집을 짓자는 ‘스몰하우스 운동’이다. 미국에서 싹 튼 스몰하우스 운동은 최근 다른 나라들로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스몰하우스 주창자들이 제안하는 집의 크기는 300~500평방피트로 아이를 키우는 일반 가정들이 동참하기에는 너무 작다. 하지만 이 운동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한다면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 패턴을 되돌아보고 조금씩 바꿔가는 데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스몰하우스 운동은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 맞닿아 있다. 스몰하우스는 미니멀리즘에 바탕을 둔 삶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하지만 작은 집에 살면 가구에서부터 생활용품 등 다른 것들까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운동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집의 크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선다. 한마디로 ‘작게 살며 크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원래 예술 쪽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기교나 각색은 최소화 하고 본질의 표현을 중요시한다. 미니멀 라이프가 추구하는 것도 이러한 군더더기 없는 삶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관련 서적이 잇달아 출간되는 등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드지에 자슈아 필즈 밀번이라는 젊은이의 스토리가 실렸다. 27세에 한 통신회사의 최연소 디렉터 자리에 올랐던 그는 6자리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지난 2011년 직원 41명에게 감원을 통고하라는 지시를 받자 그는 감원자 명단 제일 윗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써 회사에 던진 후 퇴사했다.
그리고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유물들을 주변에 모두 나눠주고 거처를 아주 작은 데로 옮겼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는 그는 TheMinimalists.c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는 아무나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시작한다 해도 확신과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속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이것을 조금씩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삶은 한층 견고해질 수 있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대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상황에 대한 통제력 상실이다. 생활의 규모를 줄이고 라이프스타일을 단순화시키면 그만큼 미래의 불안은 줄어들고, 미래의 불안이 줄어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당당해 질 수 있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도 행복을 높이려면 성취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떤 게 좀 더 손쉬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작게 살며 크게 생각하자’는 것은 사람과 소유에 예속되지 말고 내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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