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부터 1648년까지 유럽을 강타한 30년 전쟁은 14~15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백년 전쟁을 제외하고는 아마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치러진 전쟁이었을 것이다. 기간은 백년 전쟁보다 짧았을지 모르지만 그 파괴력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백년 전쟁이 영국 프랑스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고 일부 지역에 국한됐었던 것과는 달리 30년 전쟁은 가톨릭이냐 신교냐를 놓고 거의 유럽 전역이 전쟁터가 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마틴 루터의 고향이자 신교의 본산인 독일이었다. 국토의 상당 부분이 황무지가 됐으며 인구의 30%가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근대 유럽에서 후발 주자가 된 것은 30년 전쟁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후유증은 오래 갔다. 수 백 개의 공국과 왕국으로 갈라져 법과 화폐 단위와 도량형이 각각 달랐다. 거기다 나라마다 자국 산업 보호와 세수 확보를 이유로 관세를 매겼다. 1790년대에는 독일 내 1,800개의 관세 장벽이 쳐졌고 같은 프러시아 안에서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쾰른까지 물건을 옮기려면 67차례의 검색과 관세를 거쳐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일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모은 독일인들은 1833년 관세를 없애는 관세 동맹 체결에 합의하고 1834년 1월 발효시켰다. 이 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독일 경제는 1870년 보불전쟁에서 프러시아가 프랑스를 물리치고 유럽의 주도권을 잡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관세 동맹이 없었다면 독일의 통일도 경제 부흥도 없었을 것이다.
관세 장벽 철폐는 경제 성장의 필수요소다. 각 지역마다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다른 곳에 수출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생산 효율성은 높아지고 교역과 일자리는 늘어나며 국부도 증가한다. 그러나 장벽 철폐는 그동안 그 보호막에 안주하며 연명해왔던 경쟁력 없는 업체들에게는 나쁜 소식이다. 관세를 낮추려 할 때마다 소수 생산자들과 이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반대에 앞장서 왔다.
3년 전 한국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을 때도 그랬다. 김종훈 교섭본부장을 비롯한 FTA 추진자들은 “신 을사오적”으로 매도되고 한미 FTA는 “망국적 매국조약”으로 불렸으며 이것이 시행되면 “농민들은 유랑 걸식하며 대한민국은 망한다”는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미 대사관으로 달려가 “한미 FTA 폐기”를 외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 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지났다. 금융 위기로 인한 불경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도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12년 4.1%, 2013년에는 6% 증가했다. FTA로 수입관세가 면제됐거나 줄어든 제품은 연 8%씩 수출이 증가했으나 비관세품목은 3.2% 증가에 그쳤다.
미국에 굴욕적인 양보를 했다던 한국 비판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작년 미국의 대한 무역 적자가 발효 이전 120억 달러에서 207억 달러로 늘어나자 미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값싼 미국 농산물이 몰려들어 농민들이 망하게 된다는 주장과는 달리 미국 농산물 수입은 2012년 14.6%, 2013년 9% 감소했다.
올해로 발효 10년을 맞는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때도 그랬다. “이것이 발효되면 값싼 칠레 포도가 들어와 포도 재배 농민들은 다 죽는다”며 아우성을 쳤지만 10년 사이 한국 포도 농가의 수입은 2배로 늘어났다.
한미 FTA 효과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럴 필요 없다. 3년 전 국회에서 최루탄까지 던지며 발악하던 반대자들이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이 그 효과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FTA 즉각 폐기”를 외치는 집회도, 그 흔한 촛불 시위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FTA가 보장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우수한 제품을 싸게 팔 수 있는 문을 조금 열어주는 것뿐이다. FTA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이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다음 번 FTA 비준 때는 “망국적 매국조약”과 “을사오적”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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