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팁 고민 사라질까
▶ 음식값에 포함시켜 종업원에 분배방식, 시행 후에도 놓는 손님 있어 효과 의문
팁을 받지 않는 미국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 즐거운 식사 후 팁 계산의 번거로움도 해소하고 팁 분배에 따른 분쟁도 없애려는 취지에서다.
미국 식당에서 팁 문화가 사라질 수 있을까. 상상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실이다. 팁을 받지 않는 식당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고객들이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보겠다는 의도다. 대신 음식 값을 조금씩 올려 종업원들에게 일괄적으로 팁을 준다는 복안이다. 팁이 대중문화의 깊숙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식사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아들면 팁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얼마를 내야 하나. 식사비용의 15~20% 이상은 줘야 한다는데 얼마를 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많다. 눈물 나게 고마운 서비스를 받았다면 아까울 것 없겠지만 프로 정신을 발휘해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식당이 많지는 않다.
팁을 조금만 놓았다가는 ‘짠돌이’ 소리 듣기 십상이다. 심할 경우 밖에까지 따라 나온 종업원에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팁을 내지 않고 나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인식당에서는 팁 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문받고 음식 갔다 놓고 나면 계산서 받을 때까지 종업원 얼굴 보기 힘든 곳들이 많다. 이런 식당일수록 종업원들이 할 말은 많다. “종업원이 부족해서…”가 대부분이다. 주인을 탓해야 되나 아니면 종업원을 탓해야 되나. 자발적인 팁 문화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고객들이 마지못해 내는 분위기다.
그래서 일부 미국 식당들이 들고 나온 아이디어가 팁 받지 않는 운동이다.
뉴욕의 최고급 식당 토머스 켈러의 ‘퍼세이’(Per Se) 식당과 캘리포니아 와인의 본고장 나파 밸리 연트빌의 프랑스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French Laundry), 버클리의 ‘체스 파니세’, 시카고의 ‘앨리니아’(Allinea)가 수년째 ‘노 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 같이 이름 있는 유명 레스토랑인데 이들이 갑자기 팁을 받지 않겠다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보다 팁에 관해서는 다소 후한편이다. 하지만 요즘 미국인들은 흔쾌히 팁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쿠폰과 할인코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VoucherCloud.net’이 2,600개 식당 고객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75%가 대부분의 식당에서 20% 미만의 팁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팁을 적게 내는 고객들은 전혀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
설문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종업원들이 서빙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응답자의 11%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거리까지 쫓아 나와 항의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팁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35%는 10% 미만의 팁을 냈고 29%는 10~19%의 팁을 냈다고 응답했다. 팁을 20% 이상 낸다는 고객은 불과 23%에 지나지 않았다.
유명 식당들의 팁 안 받기 운동의 원인도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많은 식당 고객들은 식사를 하고 난 후에 팁 계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더 이런 성향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미국인 절반 가까운 수가 5년 전부터 팁을 적게 내고 있다. 원인은 불경기가 꼽히고 있다.
뉴욕의 또 다른 ‘노 팁’ 식당인 스시 야수다의 스칸 로젠버그 대표는 고객들은 맛있는 식사를 즐긴 직후 종업원들이 제공한 서비스에 점수를 주고 그 점수에 따라 팁을 계산하는 일에 피곤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식사는 이런 복잡한 계산 없이 그냥 즐기는 것이 돼야 한다”고 팁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들 식당 종업원들이 그렇다고 팁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팁은 음식 값에 포함돼 나오기 때문이다. 로젠버그는 팁을 없앤 후부터 음식 값을 15% 인상했다.
그런데 식당들이 ‘노 팁’ 정책을 실시하는 이유는 단지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많은 식당들이 팁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를 놓고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고민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식당에서 팁은 서빙하는 웨이터나 웨이트리스 종업원뿐만 아니라 식탁을 청소하는 보조원 또는 매니저에게 조차 분배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식당에서 종종 분쟁이 생기고 있는데 ‘노 팁’ 정책을 도입하면 아예 잠재적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우려가 말끔히 해소된다는 것이다.
실례로 스타벅스 커피 체인점에서 팁을 놓고 법정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커피 바리스타들이 매니저에게도 나눠주는 팁이 불법이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수백만달러의 팁을 되돌려 받기도 했다. 또 한 케이스는 아직 법원에 계류 중이다.
‘노 팁’ 정책을 도입하면 이런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식당들로서는 불필요한 법정소송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분명 식당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식당과 종업원들은 ‘노 팁’ 정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뉴욕 볼튼 랜딩의 ‘샤토 언더 레익’의 주인 에드워드 포이 주니어는 믿을 만한 책임 시스템이 되지 못하면 좋은 서비스는 보장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업원들 입장에서도 팁은 ‘쥐꼬리’ 봉급 시스템에서 받는 고정 수입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잠재적 금전 조달 수단이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솔라나비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젠 해리스는 “팁이 없어진다는 것은 끔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팁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어렵다. 팁이 일부 아시아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식사문화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습관처럼 자리 잡아 왔다.
사회문화 전문 연구가들은 종업원들의 팁을 서비스에 대한 보상이라는 일반적인 정의를 바꾼다고 해도 미국인 고객들의 마음까지 바꾸기는 그리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식사가 끝난 후에 무언가를 테이블 위에 놓아둬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노 팀’ 정책을 시행하는 로젠버그의 ‘스시 야수다’에서는 아직도 테이블 위에 팁을 놓고 나가는 고객들을 볼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웨이트나 웨이트리스가 식당 밖으로 쫓아나가 고객들에게 팁을 돌려주곤 한다.
로젠버그는 그러나 고객들이 점점 이 정책에 익숙해져 가고 있으며 어떤 고객은 고맙다고 인사도 한다고 전했다. 로젠버그는 “식당 운영에 좀 더 투명성을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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