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안철수 새정치연합’이 전격적으로 합당 발표를 하면서 한국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당장 6월 지방선거 전망이 짙은 안개 속에 휩싸이고 있다. 합당 발표가 나오면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당연히 여론의 추이였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고 나왔던 안철수가 공식 세력화도 하기 전에 민주당과 합치기로 한 데 대한 유권자들의 생각과, 합당에 따른 정당 지지율 변화가 그것이다.

일단 합당에 대해 실망과 부정적 인식이 상당하긴 해도 새 정당 지지율이 순식간에 집권당에 육박하는 등 판세가 요동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합당 발표 후 허를 찔린 집권당은 원색적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느긋하게 야권 분열에 따른 어부지리를 기대하고 있던 터에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비난의 포화는 안철수에 집중되고 있다. 그가 표방해 온 새로운 정치의 실체가 드러났다느니, 새 정치에 공식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느니 등등 집권당의 비판은 온통 안철수를 향해 있다. 안철수 팩터에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얘기다.

집권당은 안철수의 과거 발언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거짓 정치’를 해왔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거짓 정치’는 이미 야권이 현 집권세력 비판에 써먹어 온 프레임이다. 복지와 관련한 공약들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약속도 헌신짝처럼 버린 거짓 정치세력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왔다. 결국 6월 선거는 누구의 ‘거짓 정치’ 프레임이 더 먹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정치 전반, 특히 선거는 프레임의 싸움이다. 정치에서는 전략적으로 잘 짜인 담론을 만들어 내 유권자들의 사고를 먼저 지배하는 쪽이 승리하게 돼 있다. 특히 한국처럼 오랜 세월 정치적 갈등을 겪어 온 나라에서 프레임은 아주 큰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갖는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종북몰이를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프레임 전쟁에서는 선점이 중요하다. 한 번 대중의 머리에 박힌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 가운데 이성과 관련한 작용을 하는 부위는 2%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치판에서는 이성에 대한 호소니, 유권자들의 합리적 판단이니 하는 기대가 이상론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공화당은 프레임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테러 전쟁’뿐 아니라 ‘세금 전쟁’에서도 그랬다. 부시 행정부는 감세에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세금은 나쁜 것이고 감세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줬다. 이런 프레임은 양극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문제로부터 미국인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프레임이 잘 먹혀들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프레임을 잘 개발해 내야 한다. 또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함 혹은 자기암시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아무런 심리적 갈등이나 저항 없이 프레임을 써 먹을 수 있다. 내가 한 합당은 구국의 결단이라 비호하면서 남이 하는 합당은 야합이라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호적인 언론의 확보이다. 프레임은 결국 어떻게 확산시키느냐가 중요한데 이때 바람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합당 발표가 나온 후 보수신문들과 정권임명 사장들이 앉아 있는 TV방송들은 합당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야권의 일부 반발기류와 안철수 비판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안철수의 신뢰도를 깎아 내림으로써 합당의 시너지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몇 가지 이유들 때문에 프레임 전쟁은 대개 보수의 승리로 귀결된다.

6월 선거를 앞두고 보수신문과 공중파 TV방송, 그리고 종편들은 합당을 야합과 거짓 정치로 채색하기 위한 전방위적 공세를 펼 것이다. 야권도 같은 프레임으로 맞설 것이다. 하지만 잇단 공약 파기라는 거짓 정치의 분명하고도 객관적인 증거들이 널려 있음에도 집권세력을 겨냥한 야권의 공격이 더 먹힐 것이라 낙관하기 힘든 것은 이성보다 감정이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프레임 전쟁의 속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