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시즌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22회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85개국 5,500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이번 대회는 동계올림픽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특히 젊은 층의 관심을 끌어올리려 익스트림 스포츠인 스키 하프파이프 등 12개 종목을 새롭게 채택해 동계스포츠 마니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과 웅장함의 이면에 ‘불편한 진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을 감싸고 있는 정치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사태는 테러이다. 러시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일부 자치공화국 무장단체들이 테러를 통해 소치 올림픽을 망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 위협이 올림픽의 정치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올림픽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흘러왔다는 비판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올림픽 유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들 간의 치열한 다툼은 물론이고 참가국들 간의 경쟁에도 ‘스포츠 내셔널리즘’이라는 정치적 동기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올림픽을 무리해서 유치했다. 유치경쟁 당시 다른 국가들을 압도하는 120억달러의 예산을 써내더니 실제로는 이보다 몇 배에 달하는 500억달러를 올림픽 준비에 썼다.(이 가운데 200억달러는 푸틴 측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게 정설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납득키 어려운 무리수를 둔 것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 거액을 단 17일간의 행사를 준비하는 데 쓴 이유는 한가지이다. 올림픽을 통해 러시아의 영광을 전 세계에 과시하자는 것이다. 과거 나치즘과 파시즘은 스포츠, 특히 올림픽을 체제와 국가 선전에 적극 이용했다. 특히 냉전시대에 스포츠는 이념 대결의 장이었다. 냉전시대가 끝나면서 일그러진 올림픽의 역사는 많이 청산됐지만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국가들일수록 올림픽 준비에 지나친 돈과 힘을 쏟아 붓는다.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이 그랬고 이번 소치 올림픽은 중국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수억 인구가 지켜보는 이벤트를 통해 자국의 위상을 보여주자는 동기가 작용하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체제 안정과 국가 이미지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개최국뿐 아니라 참가국 간의 경쟁을 지배하는 것도 스포츠 내셔널리즘이다. 국가의 명예를 걸고 승부를 겨루는 이벤트인 만큼 어느 정도의 내셔널리즘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올림픽을 중계하는 방송사들의 상업주의와 결부되면서 올림픽 내셔널리즘은 이제 국민들의 아드레날린을 과다 분비시키는 위험수위에까지 도달했다.
메달 수와 순위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 것이 올림픽의 관행이지만 한국 언론들은 마치 메달수가 국력의 순위라도 되는 양 요란을 떤다. 국민들도 이에 휩쓸려 메달 수 때문에 불행해 하거나 행복해 한다. 그러나 이런 짜릿함은 순간적으로 강렬하지만 곧 허전해진다.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한국선수들에게만 사로잡혀 있으면 제대로 올림픽을 즐기기 힘들다. 올림픽에는 인생의 무수한 스토리들이 넘쳐난다. 이들의 도전과 땀은 경외감을 안겨준다.
소치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이상화는 확실한 금빛 연기와 질주로 또 한 번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해 줄 것이다. 하지만 불모지의 설움과 무관심을 딛고 썰매 종목 도전에 나서는 한국선수들의 투혼 역시 이들의 금메달 못지않게 뜨거운 감동을 안겨줄 수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5위(금메달 우선 집계)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당시 4위와 6위를 차지한 국가를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다른 국민들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곧바로 잊혀 지게 될 순위에 너무 연연해하지 말자.
NBC방송은 자회사들을 총 동원해 이번 올림픽 기간 중 1,500시간 이상 중계를 할 예정이다. 또 인터넷을 통한 실시간 중계도 1,000시간에 달한다. 너무 편식하지 않고 이름조차 생소한 다양한 종목들에 관심을 기울여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는 만큼 보이고 마음을 여는 만큼 즐길 수 있다. 동계올림픽이 바로 그런 이벤트이다. 러시아가 안쓰러울 정도로 무리를 해가며 차려준 잔치인 만큼 제대로 즐겨주는 것도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예의일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