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관용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 단일 핏줄에 대한 강력한 믿음과 오랜 세월 형성돼 온 끼리끼리 문화의 영향 때문으로 풀이된다. 근대화와 함께 국민들의 교육과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가 일상화 되면서 관용의 폭이 과거보다 많이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내재적 가치로서의 관용은 뿌리가 그리 깊지 못하다.
최근 발표된 한국사회 발전과 관련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타인에 대한 관용수준은 OECD 선진국들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1995년 25위였던 순위는 점차 하락해 2009년 31위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날로 치열해지는 생존경쟁과 경기침체 등으로 사회경제적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선진국이 되는 데는 높은 경제지표와 소득만으로는 부족하다. 관용의 문화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수만 달러가 넘는데도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산유국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열린사회의 척도인 관용의 폭과 깊이야말로 참다운 ‘국격’이라 할 수 있다.
관용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tolerance’의 라틴어 어원은 ‘tolerare’로 본래 ‘참는다’는 소극적 뜻을 지닌 말이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탁월한 사상가들의 해석을 거쳐 ‘차이를 인정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탈바꿈했다. 이른바 ‘똘레랑스’의 탄생이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 볼테르가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말은 똘레랑스 정신을 상징한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관용의 국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관용은 나와 다른 존재,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용인하는 태도이다. 다름과 차이에 마음을 여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서로 다른 것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서로 다른 것들은 무수하다. 정치적 이념도 다를 수 있고 종교적 신념도 그렇다. 인종이 다르면 외모와 피부색도 다르다. 사회 속의 다양한 소수자들도 대다수 구성원들과는 조금 다른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관용의 정신은 이런 모든 다름을 껴안는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용은 이렇듯 다름을 인정하지만 틀린 것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많은 철학자들은 사회악과 인류에 대한 범죄에까지 관용의 손길을 뻗어야 하는가를 놓고 고민을 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쓴 20세기 철학자 칼 포퍼였다.
그가 내린 결론은 관용에 한계를 긋지 않으면 관용 자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관용을 위협하는 자들에게까지 무제한의 관용을 베푼다면 관용적인 사회와 관용정신 그 자체가 함께 파괴당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를 ‘관용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관용의 문화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될 행위에 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해야 한다. 관용의 나라로 꼽히는 프랑스가 2차 대전 후 나치에 부역한 인사들 수만명을 처형한 것은 관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관용이 위협받고 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사회의 관용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은 우려스런 일이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현상은 관용의 부족이 아니라 잘못된 관용의 범람이다. 권력자들의 범죄와 일탈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용이 넘쳐난다. 역사 앞에 죄를 지은 친일 세력과 쿠데타 세력의 득세, 재벌 범죄에 대한 관대함, 비리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재기 등은 한국사회의 관용문화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좋은 영양소의 결핍보다 건강을 더 위협하는 것은 독소의 존재이다. 관용의 부족도 우려되지만 거꾸로 흐르는 관용은 사회 건강에 치명적이다. 관용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려면 역류현상부터 막아야 한다. 프랑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역류하는 관용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혼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회의 역주행을 초래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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