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작의 특집이 끝났다.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진정어린 시청자들의 반응. 그에 대한 감사의 ‘클로우징 멘트’였다.
시점은 2002년 6월. 태극 전사가 한 골을 넣었다. 드디어 16강에 이어 8강에…. 아마도 대한민국의 탄생은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온 나라가 환호로 출렁이는 붉은 파도에 뒤덮여 버린 것이다.
그 무렵 뉴욕타임스는 특집기사를 다루었다.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反)인륜범죄를 고발하고 나선 것이다. ABC 방송도 북한특집을 방영했다. 나이트라인을 전례 없이 3부작 특집형식으로 편성해 탈북자들의 참상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그 특집을 끝내면서 테드 카플은 이례적인 감사 인사를 했다. 어떻게든지 탈북자들을 돕겠다는 반응이 말 그대로 빗발쳐서다.
그해 그 시점. 탈북자들의 목숨을 건 질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뛰어든다. 중국 공안이 쫓아와 악착스럽게 아들을 끌고 간다. 부자 생이별의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그러나 온통 붉은 환호에만 들떠 있었다.
그로부터 11년. 2013년 8월의 시점. 장소는 서울.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공청회가 열리고 있었다. 탈북자들의 끔찍한 경험담이 이어진다. 그러나 강당은 텅 비어 있다. 한국의 언론들은 개막일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 다음 날부터는 기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두 달 후 장소는 런던. 같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 공청회가 열렸다. 개막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몰렸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런던 공청회는 예정 시간 7시를 훨씬 넘어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어쩌면…’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변하지 않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관심이다. 국제사회의 흐름은 정 반대다.
해마다 유엔은 북한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다. 그 정도가 아니다. 북한인권보고서가 발간되고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등 대처방안도 마련되고 있다.
‘Never Again!’- 나치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사태 같은 반인륜범죄가 또 다시 저질러져서는 안 된다.- 그 ‘Never Again!’이 국제사회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것이다.
그 구호는 그러나 한국에만 오면 무색해진다. “상당히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토록 무관심 하다니…”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 인권특별조사위 위원장의 말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캐나다도, 일본도 북한인권법을 마련했다. 그 북한 인권법안이 그러나 국회 상정부터 번번이 거부돼 왔다. 그 뿐이 아니다. 대북활동을 하는 국내 NGO를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미국 등 외국정부나 단체다. 한국정부가 아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동시에 한 가지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통일에 대한 ‘의식의 퇴행화’다. 1990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3분의2가 20년 내에 통일이 될 것이라는 응답을 했다. 지난 2012년 조사에서는 통일은 20년 후에나, 혹은 아예 불가능 할 것으로 본 사람이 47.2%로 나타난 것.
젊은 층일수록 통일에 대해 더 부정적이다. 통일이 필요하다고 본 20대는 40%도 안 된 것이다. 한 때 ‘민족 최고의 소원’이었던 통일이 이제는 무관심이나 우려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반도와 관련해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아무도 북한이라는 최악의 독재체제가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핵무기 뒤에 숨었다. 그것이 미국의, 또 한국의 북한 정책이다. 그러면서 인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해 왔다는 것이다.
수령유일체제의 북한을 무너뜨리는 무기는 비핵화 논리가 아니다. 가장 치명적 비대칭 무기는 인권정책이다. 그에 대한 뒤늦은 자성인 것이다.
장성택이 처형됐다. 그 야만스럽고 잔인한 처형방식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뒤이어 질문이 쏟아진다. 그 체제가 과연 얼마나 갈까. “기대와는 달리 오래 갈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의 주장이다. 역시 그 ‘불편한 진실’을 이유로 들었다.- 김정은 체제 붕괴를 아무도 바라지 않고 있다는 그 사실 말이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 중국도 원하지 않는다. 붕괴 후 그 뒤처리가 여간 고약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도 원하지 않는다. ‘통일 한국’이라는 것 그 자체가 싫은 거다. 한국 국민도 북한의 붕괴를 꺼리기는 마찬가지다. 왜.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2400만의 북한 주민. 그들을 떠맡는다. 그 부담을 지기 싫은 것이다. 때문에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불안정성도 잠깐. 그 체제는 오래 간다는 전망을 내린 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다. 과연 통일은 머지않은 것인가. 아무래도 ‘글쎄…’란 생각이 앞선다.
“북한주민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천문학적 통일비용 부담도 지기 싫다. 그런 식으로 희생의지가 없으면 통일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한 충고였더라. 그 말이 새삼 떠올라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