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는 계기가 된 부림사건 변론을 모티프로 한 영화 ‘변호인’이 1,000만 관객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에 시나리오의 힘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원인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박 흥행의 일등공신이라면 단연 작금의 현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주연배우 송강호의 생각 속에 이것이 잘 표현돼 있다. “이 영화는 그 분을 미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상식과 기본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주인공 송우석의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는 외침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보면 된다.” ‘변호인’의 흥행은 상식이 점차 실종돼 가는 시대에 절망하는 국민들이 그만큼 많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신드롬이다.
상식을 국어사전은 “깊은 고찰을 하지 않고서도 극히 자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주 기본적인 지식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가치관으로서의 뜻도 가지고 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 등을 떠나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와 가치를 상식이라 보면 된다.
민주주의와 관련한 가장 기본적 상식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지식으로서의 상식은 있는지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들을 섬기겠다는 허언을 반복한다. 지난 대선 때 경선에 나섰던 유력 주자들 3명도 한결같이 상식을 외쳐댔다. 박근혜 당시 후보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새 대통령 선출 후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목도해 온 것은 상식의 회복이 아니라 상식의 실종이었다. 소수의 권력층이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진짜 주인인 국민들을 규제와 조종, 그리고 훈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보여 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흘러간 과거 독재세력의 부활, 친일미화 교과서 승인 등은 건전한 상식이 살아 숨 쉬는 사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퇴행이다. 그런데도 입으로만 국민을 외치는 정치세력들은 상식을 지키기는커녕 진영싸움에만 몰두하면서 상식의 실종을 부추겨왔다.
그러면서 함께 떠내려 간 것은 타협의 정신이었다. 한국은 목적중심의 사고와 흑백논리가 지배적인 사회다. 여기에 감정적인 특징까지 더해지다 보니 사회갈등은 쉽게 증폭된다. 그래서 상식을 아는 정치인들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미국 정치권도 지난 20여년간 갈등과 대립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적인 것은 일부 민주 공화의원들이 ‘상식적 의원 모임’(commonsense caucus)을 만들어 양당의 대화와 절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권에서도 당리당략보다 국민을 우선시하는 상식적 의원들이 많이 커밍아웃해야 한다. 아직 탄생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상식의 회복에 대한 유권자들의 갈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페인이 그해 초 발간한 ‘상식론’이었다. 그는 이 작은 책자에서 “우리가 계속해 어떤 유력한 편견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 다른 사람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완고한 편견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 자신도 올바로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야를 현 시점에서 더욱 벗어나도록 확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영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극단적인 대립만을 계속하는 몰상식한 정치인들과 우중을 향한 일갈로 들린다.
한국은 치열한 입시와 취업경쟁 덕에 토막지식으로서의 상식은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렀지만 가치관으로서의 상식수준은 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식 불균형’의 해소는 아주 시급한 과제이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상식을 잃어가는 사회를 향해 변호인 송우석처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런 외침에 어떤 위협이나 규제도 뒤따라서는 안 된다. 이것이 상식을 갖춘 사회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영화 ‘변호인’에 몰리는 구름 관객들과,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에 대한 일선 학교들의 철저한 외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권력자들은 똑바로 읽어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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