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이 재조명된다. 100년 전 유럽의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2014년의 세계정세, 좀 더 좁혀 말하면 동북아시아 정세가 그렇다는 거다. 때문인지 연초부터 던져지는 화두는 ‘역사’이고 ‘전쟁’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다시 말해 100년 전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한 대 전쟁이 또 한 차례 발발할 것인가. 새 해 벽두부터 제기되고 있는 질문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중국이 새로운 파워로 부상하면서 줄곧 나온 이야기 이니까.
그 불길한 전망은 파워의 전이는 평화롭게 이루어진 경우가 드물었다는 역사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지난 500년 간 15 차례 파워 전환기가 있었다. 그 중 평화롭게 전이가 이루어진 경우는 4번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전쟁으로 결말이 났던 것이다.
관련해 새삼 재조명을 받고 있는 전쟁이 갑오(甲午)년의 청일(淸日)전쟁이다. 전쟁이 발발한 해는 1894년, 그러니까 두 갑자(甲子) 전이다. 전쟁기간은 6개월 정도로 같은 19세기의 전쟁인 게티스버그 전쟁이나 워털루 전쟁에 비해 규모면에서 훨씬 작다.
당시로는 세계의 변방이다. 그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이 전쟁이 왜 다시 조명을 받고 있나. 한반도 분단, 대만문제, 그리고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갈등 등 아시아의 현안문제, 그리고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 동북아역사는 파워 전환기에 발생한 이 전쟁을 바로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에 변화가 생긴다.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면서 기존 정치 지각 판이 요동친다. 그 경우 예외 없이 한반도는 전란의 소용돌이에 내몰렸다.
청일전쟁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20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다가 결국 전쟁이 발발했다. 신흥 해양세력인 일본과 만주족 지배 중국 대륙세력 간에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한반도의 비극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이 청일전쟁 재조명과정에서 새삼 드러나는 것은 중화민족주의 형성과정이다. 또 하나가 있다. ‘중국의 한반도 본능’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했다. 대만을 일본에 넘겼다. 청일전쟁을 매듭진 시모노세키 조약의 주 내용이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전 중국은 경악 가운데 분노로 들끓었다. 그 분노는 반청(反淸)운동으로 번진다. 동시에 새로운 브랜드의 중화민족주의 운동으로 확산된다.
얼마만큼 충격을 주었나. 1936년 모택동이 미국인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우와 한 이야기에서도 그 충격감은 묻어난다. 10대 시절 그 소식을 들은 그 때 처음으로 정치적 각성을 하게 됐다는 것이 모택동의 회고다.
그의 말은 그리고 이렇게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일본제국주의의 사슬을 벗어나기 원한다면 중국 공산당은 그 독립투쟁을 기꺼이 지원할 것이다.” 순전한 이타심에서 나온 말인가. “아니다. 한반도에 간섭하겠다는 다른 말이다.” 존 홉킨스대학의 테일러 워시번의 지적이다.
모택동은 한반도를 중국의 자연스러운 부속물로 간주했다. 스노우와의 대화에서도 한국을 서슴없이 중국의 전 식민지로 묘사했던 것. 훗날 ‘항미원조(抗美援朝)’란 이름으로 내려진 모택동의 6.25 참전결정은 그 같은 인식의 연장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면 모택동과 정반대 대척점에 있던 장개석의 한반도관은 어땠을까. “김구 주석의 염원이었던 임시정부 승인 문제를 장개석은 외면했다. 일본 패망 뒤 한국을 중국 종주권 아래 두려는 욕망에서다.” 과거 임정요원의 말이다.
이것이 중국의 한반도 본능이다. 청일전쟁 이전으로 복귀시킨다는 거다. 그 후예들은 오늘날 한반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상황은 점점 더 불길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셔널리즘과 내셔널리즘이 충돌할 기세인 것이다.
미국의 백업을 과신한 것인가. 아니면 이른바 ‘야마토정신’의 계승자라도 자처하고 있는 것인가. 그 행보가 거침이 없다. 역사의 기억을 지우고 애국과 희생을 내세운다. 그러면서 전범의 위패가 봉안 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나선다.
그 아베 성토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부르짖는 것이‘ 중국몽’(中國夢)이다. 치욕의 역사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거다. 군사력을 키우면서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댜오위다오(일본 명 센카쿠열도)가 그 타깃이다. 그리고 전면에 내세운 것은 모택동이다.
수천만의 인명을 살상했다. 그게 도조로 상징되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다. 모택동도 마찬가지다. 아니, 한 술 더 뜬다. 희생시킨 자국민만 7000만에 가까우니까.
희대의 인류학살 범들을 우상으로 모셨다. 그리고 저마다 민족의 자존을 외친다. 그 초현실적인 모습이 동북아 정세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한반도이고 대한민국이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 내셔널리즘이란 유령(幽靈)이 출몰하고 있는 동북아. 그 환영을 목도하며 혼자 중얼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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