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서고 보니 떠오르는 시가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 기쁨, 절망, 슬픔 /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로 시작되는 시, 13세기 회교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여인숙’이다.
2013년에도 매일 새로운 손님이 도착했다. 손님들은 다양했다. 세상을 한순간에 환하게 만들던 기쁨의 손님도 있었고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던 절망의 손님도 있었다. 그 모두를 거치고 난 지금 돌아보면 약간의 깨달음이 있다. 기쁨도 절망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오늘 기쁨의 조건이 내일 아픔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꽉 막힌 절망의 조건에서 새 길이 열리기도 한다는 깨달음이다. 살아있는 한 모든 것은 진행형, 순간에 웃고 순간에 우는 1차원적 반응에서 벗어나 좀 초연해져야겠다는 깨달음이다.
올해 초 70대의 독자 한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신문지면을 통해 만난 인연으로 10여 년 알고 지내는 부인의 남편이다. 이메일은 40대 큰 아들에게 닥친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다. 명문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고속 승진하며 실패라는 걸 모르던 아들에게 2012년 나쁜 일들이 계속 터져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연초부터 10살 난 딸의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데 의사들이 온갖 검사를 하고도 원인을 못 찾고 있다. 4월 말, 대학 2학년의 우등생 큰 딸이 음주운전으로 정학 당할 처지에 놓였다. 그 며칠 후 12살짜리 아들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그리고 뒤이어 둘째딸이 그해 들어 3번째 자동차 사고를 냈다. 6월 중순 현관 쪽 창문유리가 아무 이유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그 다음날 국세청에서 세무감사 통보가 왔다.”말 그대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었다. 아들이 “다음은 또 뭘까요?” 하며 “아빠, 기도해주세요” 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고 그분은 말했다.
어느 인생도 항상 청명하지는 않다.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고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한다. 삶에서 나쁜 일들이 닥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보통 세 가지이다.
가장 흔한 반응은 걱정과 두려움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아울러 앞으로 일어날 가장 나쁜 상황들을 미리 상상하며 불안해하느라 밤잠을 못 잔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40%는 ‘안 일어날 일’ 30%는 ‘지나간 일’ 12%는 ‘상상으로 만들어 낸 일’ 18%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우리가 불필요한 걱정을 너무 많이 한다는 말이다. 걱정이라는 손님은 문전박대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낙관적인 반응이다.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 일뿐,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며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긍정적인 태도이다. 어두운 쪽보다는 밝은 쪽을 보는 낙천성은 타고나는 기질이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사람들은 삶이 훨씬 편안하다.
다행인 것은 낙관주의가 학습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의식적으로 낙천적인 척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낙관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걱정 근심이 지나친 사람들은 시도해볼 만하다.
그리고 마지막은 신앙에 의지하는 태도이다. 시련 속에서도 신의 은총이 함께 한다고 믿는 믿음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앞의 독자는 “사람의 말로는 아들을 위로할 길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그때 힘이 될 만한 성경구절을 인용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난 지금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큰 아들 가정은 평안을 되찾았다고 그분은 며칠 전 통화에서 전했다.
80년 우리의 삶은 도도한 장강이다. 때로 잔잔하고 때로 격랑에 휩쓸리며 흐르고 흘러 한 생애를 이어간다. 눈앞에 닥친 역경, 당장의 시련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배운다면 삶은 덜 힘들 것이다.
한국에서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대자보가 유행이다. 대학의 청년들이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하며 이렇게 이웃이 고통 받고 있는 데 “당신은 안녕하신가, 그렇게 안녕해도 괜찮은가”를 묻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는 그저 단순한 의미에서 안녕들 하신지 궁금하다. 2013년 한해도 저마다 넘어야할 역경들이 많았을 것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불쑥 불쑥 찾아들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안녕하든 안녕하지 못하든 한해를 무사히 살아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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