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인 지인이 재미있는 조크를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어느 신부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 이야기이다. 하늘나라 식당에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을 받지 않았다. 신부가 화가 나서 따지자 종업원 말이 “여기서는 셀프 서브”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주문도 받고 음식도 날라주고 있었다. 그래서 물으니 “저 사람들은 평신도”라고 했다. 신부는 세상에서 대접을 많이 받았으니 하늘나라에서는 직접 해야 하고 평신도는 세상에서 봉사를 많이 했으니 여기선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주교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신부가 물었다. “주방에서 조리 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황님은?” “지금 배달 나가셨습니다.”낮은 곳보다 높은 곳, 대접 하기보다 받기에 익숙한 ‘주의 종들’에 대한 풍자로 개신교에도 비슷한 조크가 있다.
그런데 요즘, 하늘나라에 가기 전부터 ‘배달’나가는 교황이 있다. 밤이면 일반 사제복으로 갈아입고 교황청을 빠져나가 거리의 노숙자들을 돌본다고 한다. 과거 추기경 시절에도 밤이면 몰래 나가 노숙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같이 앉아 먹기도 했다고 한다. 노숙자들에게 빵 배달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지난 3월 즉위 당시 청빈한 삶으로 인기가 높았던 교황은 이후 빈부격차, 사회정의와 불평등,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동성애와 낙태 등 이 시대의 주요 이슈에 대해 거침없이 입장을 드러내면서 종교적 울타리를 넘어 지구 전역에 신선한 혹은 불편한 충격을 주고 있다. 전통적인 교황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배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징은 벽을 허무는 것이다. 바티칸의 벽을 허물고, 가톨릭 교리의 벽을 허물고, 교황으로서 권위의 벽을 허문다. 벽을 허물고 사람들을 품어 안는다.
신학자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와 달리 청소부, 나이트클럽 문지기, 문학 교사 출신인 프란치스코는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다.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사람들과 더불어 편안하다. 근엄한 설교 대신 소박한 대화체의 설교를 하고 “기도하다가 가끔씩 졸기도 한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여유롭다. 권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교황이 교리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낙태도 동성결혼도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자들을 내치지 않고 감싸 안는 데서 감동이 일고 논란이 인다. 지난여름 기자들이 동성애 사제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교황이 한 대답이 대표적이다. “만약 동성애자인 어떤 사람이 주님을 찾고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내가 누구라서 심판하겠는가?”누구든 포옹하며 포용하는 자세인데 여기에는 무신론자도 포함된다. 교황은 분명히 했다. “교회는 전장의 야전병원 같은 곳이다. 피 흘리는 환자를 앞에 두고 콜레스테롤 수치 따질 건가.”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교리의 벽으로 차단하고 내쫓을 것이 아니라 일단 치료부터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자비로 행하라고 가르친다.
교황은 자신의 삶의 핵심으로 자비를 꼽는다. 특히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 커서 ‘빈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교황은 냉혹한 경제체제를 통렬히 비판한다.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살인에 버금가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돈이 사람보다 중시되는 세태에 대해 교황은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늙은 노숙자가 길에서 죽은 건 뉴스가 안 되고 주식시장이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된다는 게 말이 되는가.”이런 교황에 대해 비난이 없지 않다. 가톨릭 보수진영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옹호했다고 불편해하고, 자본주의와 세계화 비판에 대해서는 반 자본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판이 일었다.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탄절기이다. 예수의 삶을 묵상하며 우리 삶을 돌아볼 때이다. 낮고 비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 십자가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예수가 가르친 것은 복잡한 교리가 아니었다. ‘사랑하라’였다. 2000년 전을 볼 수 없는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본다.
“신은 우리의 사랑을 보고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 특히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볼 것”이라고 교황은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이념과 종교, 편견의 벽이 두껍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벽부터 허물어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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