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연구 및 치료 저널’ 최신호에 실린 뉴스가 눈길을 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의료진이 1,914명의 만성통증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배우자를 잃는 고통스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통증을 훨씬 잘 견디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연구진은 결혼생활의 만족감이 통증을 극복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런데 막상 조사를 해 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배우자를 잃는 큰 슬픔을 맛 본 사람들이 만성통증을 더욱 잘 극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생기는 지혜나 주변인들의 정서적 지원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이 같은 결과와 관련해 연구진이 추정하는 이유는 이렇다. “삶 속에서 가장 큰 상실을 맛 본다는 것은 극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 뉴스를 접한 작가 프랜신 루소는 타임지 칼럼에서 46세에 갑자기 남편을 여의고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나는 고통과 싸워야했다. 마치 불길을 뚫고 이곳에서 저쪽 끝으로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불길을 통과한 후 나는 한층 더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통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아프고도 불편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을 꼭 부정적인 것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고통을 통해 한층 더 강해진다는 것은 그저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고통의 체험은 비단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는 것을 이번 연구결과는 보여준다.
인간은 신묘한 존재이다. 자식이나 배우자를 잃고 내장이 끊길 듯 극심한 슬픔과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이것을 극복해 간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으면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대부분은 몇 달 지나지 않아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내면은 한층 더 단단해 진다.
이처럼 인간의 정신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 이 회복력 때문에 우리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비극과 고통을 넘어서며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극심한 충격을 받으면 우울함과 불안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런 충격은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외상 후 장애로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은 일상적 용어가 돼버린 트라우마는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끔찍한 무언가가 돼 버렸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더러, 항상 우리에게 해로운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회복력을 통해 트라우마를 한층 더 성장하는 계기로 만드는 사람들도 많다. 이른바 ‘외상 후 성장’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로 잡혀 오래 고문당한 미군 중 약 60%가량은 당시 겪었던 고난이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유익했다고 응답했다는 보고도 있다.
어렸을 때 못생긴 외모 때문에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과 구박을 받으면 깊은 트라우마가 생긴다. 하지만 이것을 장애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동기로 삼은 인물들이 적지 않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그랬고, 인간의 다섯 단계 욕구를 주창해 현대 심리학의 초석을 놓은 에이브러햄 매슬로도 이런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 탓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들 가운데 3분의 1 가량은 선천적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회복탄력성이 아주 뛰어나다. 이런 회복탄력성을 흔히들 ‘마음의 근육’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나머지 3분의 2는 오랜 고통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육체의 근육을 키우려면 운동을 해야 하듯 훈련을 통해 얼마든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쁜 상황이 닥쳤을 때 중요한 것은 “이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 둘러보면 어디엔가 새로운 문이 열려 있을 것”이라고 자각하는 것이다.
잃는 게 사람이든 물질이든 상실은 삶의 일부분이고 일상사이다. 올 한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실에 따른 슬픔과 고통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게 마련이다. 다만 내 마음의 근육에 따라 그 기간이 달라질 뿐이다. 그러니 ‘고통과 성장은 쌍둥이 같은 관계’라는 위로를 빈 소리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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