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으로 쏘면 살덩이가 남는데 개의 먹이로 주거나 불로 태워 흔적을 남기지 않기도 한다. 장성택의 시신도 개의 먹이로 던져졌을 가능성이 있다”실각설이 처음 나온 게 지난 3일. 처형 사실이 공개된 게 12일. 그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에 평양에서 벌어진 광란의 처형 극을 뒤로 하고 나온 말이다.
패륜의 극치라고 해야 하나. 뭐라 표현하기조차 힘들다. 그저 악성 소문이겠지 하던 설(說)들이 사실로 판명되면서 새삼 드러난 것은 수령절대주의라는 북한체제의 민낯이다. 악(惡) 그 자체라고 밖에 달리 말 할 수 없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학한 방법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의 2인자 장성택은 결국 처형됐다. 의문은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다.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다. 왜 그런데 그토록 신속히, 그리고 잔인하게 처형됐나. 숙청의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판결문 내용대로 정변을 계획했나. 리설주와의 관계는….
북한은 그 자체가 하나의 블랙홀이다. 때문에 외부인, 특히 서방세계는 평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실에 있어 잘 모른다. ‘장성택 처형 극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 하는가’ - 그 질문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대체로 두 가지로 외부 전문가들의 관측은 압축된다. 장성택 숙청은 김정은 주도로 이뤄진 ‘김정은을 위한 숙청`이다 - 한 쪽의 지적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같은 전문가가 내건 주장으로 김정은은 이제 명실상부한 1인자로 부상, 정치적 입지는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그 란코프도 그러나 한 가지 사실에 동의한다. 모든 것에 있어 투명성이 배제돼 있다. 그게 북한의 특징이다. 그런 북한이 장성택 숙청에서 재판, 그리고 처형과정을 극히 이례적으로 신속히 공개했다. 그게 그런데 아마도 치명적 실수가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해서다.
북한기준으로 보아도 숙청과 처형방법이 소름끼치도록 잔인했다. 장성택에 대한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반(反) 김정은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돼 있다는 권력내부의 문제를 드러냈다. 또 판결문은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지는데도…’란 장성택의 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맞은 위기상황을 자인한 셈이 됐다.
왜 그랬을까. 정보통제가 사실상 불가능 할 정도로 북한의 내부 상황은 유동적이란 것이 그 대답이다. 정보통제로 악성루머가 돌 때 상황은 더 걷잡을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해 제기되는 다른 시각은 ‘장성택 숙청을 대혼란이나 체제붕괴로 이어지는 내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비롯된 심한 경련증세’로 보는 것이다. 일종의 대파국 시나리오다.
“북한경제는 말 그대로 거덜이 났다. 해외로 금을 매각하는 것이 바로 그 증거로 현재 북한의 상황은 호네커 말년 시절 동독과 흡사하다.” 구 동독지역 출신 북한문제 전문가 로이디거 프랑크의 지적이다.
생활수준 향상을 캐치프레이로 내걸었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권력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또 스스로의 차별화를 위해 아파트 건설, 위락공원 조성 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그 선심 정책 결과 북한 경제는 파탄 상황을 맞았다. 반대로 주민들의 기대는 높아만 지고.
경제적 파산은 정치적 파산을 불러온다. 김정은 체제가 바로 그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그 속죄양으로 장성택 숙청- 처형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됐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래도 여전히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그 처형방식이 ‘왜 그토록 잔인 했는가’다. 소년 독재자 김정은의 포악한 성격 탓이다. 한 쪽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김정은이 직접 각색 연출한 드라마가 아닌 군부 파워에 밀려 이뤄진 정치 극’이기 때문이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뉴욕타임스의 분석도 그렇다.
말하자면 장성택 세력에 반감을 가진 제 3의 군부 강경세력이 김정은의 이름으로 연출한 드라마라는 것이다. 판결문 내용이 그렇다. 군부 강경파의 냄새가 깊이 배어 있다는 분석이다.
이후에 올 수 있는 상황은 그러면. 북한 권력 내부의 극심한 분열이다. 장성택 세력에 대한 대대적 숙청은 불안정성 가중과 함께 대반격을 불러오고 극단의 경우 김정은 제거 기도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거다.
다른 말이 아니다. 김정은 단독 작품이든, 군부강경파와 김정은의 합작품이든, 장성택 숙청은 수령절대주의 북한체제의 ‘엔드 게임’(End Game)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이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암중모색의 관측이니까 특히.
그렇지만 한 가지 참고가 될 사실이 있다. 카리스마의 지도자로 떠받들렸다. 그 김일성도 70년대까지 계속되는 쿠데타 기도에 시달렸다. 김정일은 1인자로 부상한 그 다음해 바로 대대적인 쿠데타 기도에 직면했었다.
첫 이닝은 1대 0으로 지켰다. 갈 길은 그런데 아직 멀다. ‘소년 독재자’는 이 스코어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북한이라는 블랙홀이 커지면서 극동정세는 더욱 더 불확실성에 빠져들고 있다-. 누구의 지적이었던가. 그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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