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 이어질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알았다. 내 안의 비통함과 증오를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갇히게 되리라는 사실을.”1990년 2월11월, 27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던 순간을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회고 했었다. 생애 중 정점을 이루었을 중요한 시기 근 30년을 송두리째 빼앗긴 회한, 분노, 증오를 의식에서 몰아내지 않는다면, 모두 감옥에 남겨두고 나오지 않는다면, 감정의 감옥에 갇혀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40대 중반 세상 밖으로 추방되었던 무장혁명의 투사는 70대 초반 증오를 버린 평화의 사도로 세상에 다시 걸어들어 왔다. 그리고 역사는 바뀌었다.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의 상징, 흑인 민권운동의 우상, 그리고 마침내는 이 시대의 성자로 추앙 받았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별세했다. 5일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는 추모물결로 하나가 되고 있다. 슬픔만은 아니다. 평생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몸 바쳤던 그의 삶을 찬양하는 축제가 함께 벌어지고 있다. 과거 그가 살았던 소웨토에서는 주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로 나와 춤추고 노래하며 한 위대한 인물의 삶을 기리고 있다.
용서, 화합, 관용 … 만델라를 ‘만델라’로 만든 대표적 요인들이다.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없는 자들과 화합하며, 포용할 수 없는 자들을 관용으로 품어 안는다는 원칙에 철저함으로써 그는 300여년 인종차별의 깊고 깊은 원한의 골을 메워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만델라의 평생을 관통하며 그를 지탱한 힘, 용기라고 생각한다.
만델라의 생애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남아공의 무자비한 흑백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젊은 시절, 정치범으로 옥에 갇혀 보낸 중장년 시절, 그리고 통합의 정치로 남아공에 새 시대를 연 노년 시절이다. 애벌레가 고치를 거쳐 나비로 날아오르듯, 젊은 혁명가는 고치 속 같은 암흑기를 거쳐 빛나는 정치가로 날아올랐다. 그 시기 시기마다 그를 지탱한 것은 감히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용기였다.
민주 투사로서 그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였다. 결의에 찬 표정, 덥수룩한 머리, 통통한 얼굴의 청년 만델라는 70년대 아프리카 대학 기숙사 방마다 걸려있던 인기 포스터의 주인공이었다. 두려움 모르는 용기의 투사로서 만델라는 청년들의 우상이었다.
1940년대부터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청년연맹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변호사 만델라는 점점 평화적 시위의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했다. 60년대 초반 ANC 산하에 무장투쟁조직을 만들고 서슬 퍼런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게릴라 작전을 주도했다. 그에게는 테러리스트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결국 체포되고 1964년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 중 피고석에서 한 그의 연설은 지금도 유명하다.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이상으로 품어왔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자 성취하고 싶은 이상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나는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잔혹한 탄압과 차별이라는 적을 그는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로 맞서 싸웠다.
로벤섬에서의 죄수생활은 절망과의 싸움이었다. 일단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영원히 잊혀지는 곳으로 악명 높은 감옥이다. 매일 채석장에 나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돌을 깨는 고된 노역이 이어지고, 돌먼지에 눈물관이 파괴돼 그는 수년간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이때 생긴 폐질환은 지병이 되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것. 27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그는 무서운 용기로 암담한 현실에 맞서며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이상을 지켰다.
자유를 되찾고 정치인으로 돌아온 마지막 단계에서 그의 적은 증오와 분노였다. 백인들을 당장이라도 처단할 듯 복수심에 들끓는 흑인 민중의 분노가 천둥처럼 강렬했다. 잃어버린 27년에 대한 그 자신의 분노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증오와 복수심을 활화산처럼 쏟아낼 것으로 흑인들은 기대하고 백인들은 두려워했던 역사적 전환점에서 만델라는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용서와 관용 그리고 화해였다. 가슴 속에 차고 넘치게 쌓였을 분노와 미움을 그는 오랜 세월 분해하고 발효시켜서 도덕적 용기로 승화시켰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절망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 용기, 증오를 용서로 승화시키는 용기 -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던 한 위대한 인물이 행동으로 보여주며 남긴 유산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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