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 잠을 이룬다.” 군가 ‘진짜 사나이’다. 1970년 10월, 머리 박박 깎고 들어간 훈련소에선 아침점심저녁 할 것 없이 하루에도 수없이 진짜사나이를 불러야 했다.
그러면서 고된 훈련을 이겨내야 했고, 이겨냈다. 그것은 국방을 지키는 너와 나가,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기에 부모형제가 나를 믿고 단 잠을 이룬다는 ‘진짜 사나이’란 자긍심의 가사가 마음을 무장시켰기 때문일 게다. 훈련이 끝나고 1년이 지난 1971년도, 월남 파병에 지원했다. 인사행정병이 가려고 하니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제대할 때까지 월남행은 좌절돼 버렸다. 월남(베트남)전 파병(1964-1972년)은 3차부터 전투병이 파견됐다. 이때, 채명신소장이 주월한국군총사령관이 되어 지휘(1964-1969년)하게 된다. 채장군은 귀국 전인 1969년 4월, 타고 가던 헬리콥터가 베트콩의 저격을 받아 추락됐으나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지난 11월25일 채명신장군(87)이 세상을 하직했다. “파월 장병이 묻혀 있는 병사 묘역에 나를 묻어 달라”. 그의 유언이다. 어떻게 부하들을 이토록 사랑할까. 국방부는 장군묘역에 안장하려 했다. 그의 유언이라 해도 그를 사병묘역에 안장할 수는 없었던 거다. 그런데 유족들이 그의 유언을 청와대에 진정했고 청와대가 수락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사병들과 함께 좁은 묘역이지만 영원히 같이하게 됐다. 서울현충원의 사병묘역은 3,3평방미터요 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은 26.4평방미터다.
그가 묻힌 서울현충원 제2묘역엔 1,033명의 사병이 묻혀있고 이중 971명의 묘가 월남전사자 사병 묘역이다. 장군이 사병과 함께 영원히, 정말 진짜 사나이다.
채명신은 1926년 11월 황해도 곡산에서 독립운동가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신앙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감옥에 갇혀있던 아버지는 광복(1945)후 풀려났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채명신은 교사(평양사범학교졸·평안남도 용강 덕해소학교)가 되었으나 소련이 주둔한 북에서 공산주의가 싫어 월남(1947)한다.
1948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전신)에 합격하고 제5기로 졸업한 채명신은 군인의 길로 접어들며 후에 박정희와 함께 5.16을 성사시킨다. 이후 군인이 민간인에게 정권이양을 하지 않는 박정희의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대장 진급에서 탈락돼 중장으로 예편한다. 그 후 외교관(스위스, 스웨덴, 브라질대사)등으로 있다 은퇴한다.
채명신장군에겐 미담이 하나 있다. 그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 인제군에서 북한인민군 조선로동당 제2비서겸 북한 대남유격대총사령관 김원팔(중장)을 생포한다. 그때, 김원팔은 아들처럼 데리고 다닌 전쟁고아가 있었다. 김원팔은 전향하지 않고 채명신이 준 권총으로 자결한다. 자결 전, 김원팔은 유언을 남겼다.
“아들처럼 키운 고아를 남으로 데려가 공부시켜달라”고. 그가 이번, 채명신장군장례식때 조문객을 맞이한 채 모 교수(서울대, 대학원 박사)로 채장군이 의형제로 입적시켜 공부시킨 사람이다. 역사란 이런 사람(채명신)을 가리켜 무엇이라 말할까. 적과 동지가 없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라 부를까. 그는 적장의 유언을 들어주었다.
채장군의 미망인 문 여사는 “채 장군이 김원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채 교수를 동생으로 맞았다. 채 장군이 평소에 김원팔의 칭찬을 많이 했다. 적장이긴 하지만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다”고. 채장군은 군에 있을 때, 북한군고위급이 데리고 있던 고아를 동생으로 입적시킨 사실이 문제시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진짜 사나이란 누구를 말할까.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루게 하는 자, 진짜 사나이다. 함께 싸우다 죽은 사병들의 묘소 옆에 함께 묻힌 장군, 진짜사나이다. 적장을 칭찬해 줄줄 아는 자, 진짜 사나이다.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사는 자, 진짜 사나이다. 진짜 사나이, 채명신.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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