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1875-1965)과 관련된 뉴스 두 가지가 최근에 있었다. 하나는 미국의 징병관계 서류에 국적이 놀랍게도 일본으로 게재됐다는 것과, 또 하나는 로스앤젤레스 소재 동지회관이 한국독립운동 사적지로서 보존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동지회는 이승만을 따르는 독립운동단체이므로 우남에게는 둘 다 불명예스러운 것뿐이다.
도산 안창호(1878-1938)와 관련된 것도 두 가지가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117년 만에 명예졸업증서를 받았다. 선교사들이 세운 언더우드학교에서 3년간 수학했는데 그 학교가 바로 연세대학교 전신이다. “일생을 민족의 독립과 사회개조를 위해 헌신한 영원한 스승”인 것이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이유였다. 다른 것 하나는 안창호가 옥중에서 만든 지승공예품 11점이 남아 있다는 사진보도였다. 그의 근면성과 성실성이 잘 드러나는 단면이다.
우남 이승만과 도산 안창호, 이 두 분은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대표적 인물들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특히 미주한인사회가 배출한 걸출한 민족지도자여서 우리의 자긍심을 한껏 높여 준다. 족히 우리 후대들에게도 쌍벽을 이루는 사표가 될 만하겠다.
유감스러운 일도 있다. 미주한인사회 초기에는 어디서든지 우남계와 도산계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생각보다 심했다. 그것이 독립운동의 동력을 상당히 떨어뜨렸다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게다가 그 싸움은 상해 임시정부 그리고 독립국가가 된 대한민국에까지 연장된 암적 요소였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같은 점들이 상당히 많다. 연령, 유교적 가치관, 서양식 교육경력, 기독교 신앙, 목사가 되라는 선교사들의 권고를 고민 끝에 거부, 청년 때 도미하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냈다는 것, 생명을 위협하는 투옥생활, 상해임시정부 고위 지도자로 참여, 동지회나 국민회 등 애국단체를 조직해서 이끈 대표적 지도자라는 점 등등이다.
그러나 다른 점들도 많다. 이승만은 미국 정규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였다. 그것도 하버드와 프린스턴 같은 명문 중의 명문대학이었다. 그 당시 한국 사람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업적이다. 그러나 ‘교육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미국에 왔다는 도산은 뒤늦은 나이에 미국 초등학교 입학했지만 그것조차 졸업한 것 같지 않다. 독립운동이 더 급박했던 까닭이리라. 우남은 학력이 뛰어났고 도산은 인격이 훌륭했다.
우남은 정치와 외교로 독립운동에 몰두했지만 도산은 교육입국 곧 민족성 개조를 통한 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우남은 영어에 능통했고 독일어로도 대화를 할 정도였지만 도산은 한국말 연설에 탁월했다. 도산은 현미경적 인생관, 우남은 망원경적 세계관을 가졌다. 도산은 캘리포니아가 독립운동의 고향이었지만 우남은 하와이와 수도 워싱턴이 활동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도산은 김일성의 존경도 받았지만 우남은 그에게 공개처형 대상 제1호였다.
이처럼 도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존경스러운 스승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러나 우남의 경우는 논쟁이 치열하다. 한편에서는 난세를 이끌어온 민족의 영웅이요 심지어 국부(國父)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양민을 학살한 잔인한 독재자, 친일파를 끌어들여 병적일 만큼 권력에 집착했던 권모술수가, 그리고 남북분단의 원흉이라며 지금도 줄기차게 탄핵한다. 요즈음 한국 역사교과서 논쟁의 초점이 바로 그것 아닌가.
만약 우남도 도산처럼 독립운동만 하다가 해방 전에 생애를 마쳤다면 틀림없이 찬사만 받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그가 신생독립국가의 최고 권력자였기에 수혜자들은 맹목적 충성파가 되었고, 피해자들은 이를 가는 반대파가 되었다. 권력자에게는 아무리 훌륭해도 배신자가 있고, 아무리 포악해도 추종자가 있는 법이라던가.
그런 점에서 이승만의 인물됨은 권좌에 앉은 일이 별로 없는 안창호가 아니라 오히려 철권정치가 김일성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답은 쉽게 나온다. 이승만과 김일성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잔혹한 독재자였을까. 삼대를 이어 폭력정치를 하는 자가 누구일까. 누가 더 많은 동족을 굶기고, 학대하고, 죽였는가. 진실로, 누가 더 자유, 민주, 인권, 평등, 법치, 복지가 보장된 국가를 후손에게 선물했는가. 양심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바르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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